2019년 12월 21일
며칠 전에, 가라앉은 기분을 좀 환기하고 싶어서
버스를 타고 늘 다니던 미장원에 갔다.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염색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지만
자꾸만 늘어나는 흰머리를 볼 때마다 마음까지 더 늙어가는 것 같아서
염색도 하고, 퍼머도 하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가지 않았는데도 다행히
손님은 나보다 조금 더 연세가 들어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 외에는 없더라.
동네 미장원은 참새 방앗간 같다.
더욱이 그곳 원장님은 일곱명의 자매가 모두 이곳 토박이라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옆에서 수다떠는 말만 들어도 지역신문 하나 꼼꼼히 읽는 느낌이다.
그런데 옆에 앉아 퍼머를 하시던 그 어르신이
텔레비전을 보는 습관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손주들이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걱정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아줌마 오지랖'을 참지 못한 내가 끼어들어 말했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처음에만 좀 찾았지, 요즘은 오히려 휴대폰과 컴퓨터로 더 많이 보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애도 괜찮으실 거라고.
그랬더니 그분 하시는 말씀이,
"그럼 집 한가운데 비어 있는 곳을 어떻게 해? 집 중심에 아무것도 없는 건데."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집이 텔레비전을 가장 중앙에, 집의 중심에 놓는다.
심하게 말하자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의 중심에 텔레비전을 모시고 사는 거다.
우리집은 그렇게 중심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있지도 않지만,
순간 내 양심을 건드리는 소리.
'집의 중심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은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내 마음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 뭐를 두는지가 중요한 거지.'
그랬다.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돈, 사람들의 관심, 인정 욕구, 성취 욕구, 인터넷 세상, 먹을 것, 입을 것 등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번갈아가면서
내 중심에 놓인 그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였는가.
주일을 지키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입네, 하고 살지만
실제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우상들을 내 안에 들이며 살았던가.
게다가 얼마나 자주, 나 자신이 스스로 우상이 되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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