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0일 화요일
음감이 예민하지도 않고, 음악을 특히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다
뭐 하나 제대로 배우려고 해도 끝을 보지 못하는 박약한 의지력 때문에,
어떤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특히 피아노를 잘 치거나 기타를 잘 쳐서
어떤 노래가 나와도 반주를 멋지게 하거나,
스스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그래서 몇 년 전에 세운 '십 년 계획' 안에 피아노 배우기를 넣어놓았지.
갑자기 안식년처럼 갖게 된 넉넉한 시간을 보내면서
요즘처럼 뭔가 열심히 배우기 좋은 시간은 없다.
그런데 나는 피아노 배우기에 도전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내 마음속에 그만한 간절함은 없나 보다.
대신, 오래 된 풍금으로 성가 반주를 연습하고 있다.
'육성회 임원'이 학교에 풍금을 기증했다고 적힌 날짜는 1991년 5월 15일.
아마도 스승의 날을 맞아 학교에 기증을 했나 보다.
몇 년 전, 그 학교 서무실에 근무하던 어느 학부모가 이제는 필요없는 풍금들을 정리한다고,
어차피 버리는 것이니 어린이집에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해서
상태가 비교적 좋은 것을 몇 개 골라왔는데, 그 중 하나가 아직 우리집에 있다.
1991년이면 나는 수련기를 마치고 막 첫 서원을 했던 때다.
지금이야 가톨릭 성가의 음원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수녀들이 굳이 성가 반주를 배울 필요가 없겠지만,
예전에는 어느 공소로 파견될지 모른다고
연중 쓰일 수 있는 네 곡(입당/봉헌/성체/파견) 정도는 칠 줄 아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하루에 삼십분쯤 주어진 시간 동안 방음이 된 올갠방에서 연습을 하고,
얼마쯤 지난 뒤에 수련장 수녀님과 선생 수녀님 앞에서 시험을 봤다.
어찌나 떨리던지.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낡은 풍금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은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치지는 못하더라도
가톨릭 성가집에 있는 성가곡들은 스스로 반주를 하면서 부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삼십 년이 지났어도 어제처럼 느껴지는,
그래도 순수하고 착했던 나의 수련기를 오래 기억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오후에 삼십 분 정도 떠듬거리면서 풍금을 치고 왔다.
아직은 따라부르기에 민망할 만한 실력이지만
이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성가책 어디를 펴놔도 비슷하게나마 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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