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궁시렁궁시렁

故 한 진(아우구스티노) 선생님 영전에

종이-배 2019. 12. 24. 21:27

선생님,

지금 전국에 있는 모든 성당에서는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빛을 밝히고 있겠지요.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생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언젠가는 접하리라는,

누구나 한 명도 빠짐없이 공평하게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에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졌습니다.

부활과 성탄 때면, 늘 먼저 문자 메시지로 제게 주님의 축복을 전해주셨기에

이번 성탄에는 잊지 말고 꼭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리라 다짐하고 있던 차여서,

낮에 갑자기 날아든 부고에 더 황망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말, 아우구스티노 축일에 제가 인사를 드렸을 때

상본 사진과 함께 답신을 주셨을 때도

저는 선생님께서 이리 빨리 떠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지난 주에 수지 호숙이네 들렀을 때 선생님께 인사 전화라도 드렸을 터인데,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떠나실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제가 참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실 선생님을 자주 뵌 것은 아니었지요.

못난 제자를 따님 견진성사 대모로 권해주셔서 뵈었고,

그 후에 수도복을 입고 있을 때는 어찌나 저를 정중히 대해 주시던지,

제가 몸둘 바를 몰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뵌 것은, 벌써 십오년쯤 된 것 같네요.

저 어린아들을 데리고, 선생님께서 정년퇴임 하신 뒤 숙명 백년사 편집하고 계시던 학교로

찾아뵌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그후로는 졸업 30년후 어렵게 마련된 사은회가 있었으나

저는 사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가 뵙지 못하였고,

지난 해 용인묘지 갔을 때도 시간이 맞지 않아 뵙지는 못하고 돌아왔으니,

지금은 그런 일들도 후회가 됩니다.

선생님 음성이 변하지 않으셔서인지,

전화할 때면 저도, 선생님도 마치 40년 전 갈래머리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답니다.


여고시절에는 저를 참 예뻐해 주시던 선생님,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던 선생님은

제게 아빠 같은 분이셨습니다.

비록 아주 작은 아이들이지만 저도 선생님처럼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제가 나이가 들면, 선생님처럼 신앙 안에서 겸손하고 품위있게 기도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다 배우기도 전에 선생님이 떠나셨네요.


선생님,

음악회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시기에

제가 언젠가 선생님 팔짱끼고 함께 음악회 모시고 가겠다고 했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제자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드린 말씀도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평생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셨다는,

늘 사랑어린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고 아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은

제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선생님,

이제는 성탄이나 부활, 축일 때가 되어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릴 수도 없고, 선생님의 문자를 받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그렇게 사랑하셨던 주님과 가까이 계실 테니,

하늘에서 저를 내려다보시면서 계속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 내일은 빈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녀석,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하고 꾸짖지 마시고,

주님 곁에서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온 제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세요.

이제는 해마다 성탄 전야면, 선생님을 기리며 미사에 참례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올 때까지,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편히 쉬세요.


2019년 12월 24일,

남기은 소피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