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오전에 영적 독서로 읽고 있는 <공동의 집>.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해설한 책이다.
[찬미받으소서]는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사서 읽었고, 필사까지 한번 했던 회칙이지만,
그렇게 머리로 읽은 만큼, 내 생활에서는 별로 바뀐 것이 없음이 늘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공동의 집>을 읽으며,
이제부터 내 신앙생활에서 가장 성찰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릴 적부터 듣고 배워온 성찰의 기준(?)은 십계명,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면서 이러이러한 것은 죄다,라고 주입되어 온 것들이 있다.
교회는 일부러 주입시키지 않았다고 해도, 은근히 그런 쪽으로 밀어왔던 것들.
주일미사에 빠졌는가?
아침저녁 기도를 하지 않았는가?
부모에게 불순종하였는가?
음욕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등,
그렇게 세워준 죄의 목록들이 어쩌면 나와 하느님의 관계, 이 세상과의 관계를 축소시켰고,
심지어 그 목록에만 들어 있지 않으면 내가 저지른 죄가 없는 양 생각하게도 되었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 '성'문제를 유독 빠지기 쉬운 죄의 첫자리에 두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이제야 생긴다.
성적 호기심과 욕구가 강력하게 나오는 청소년 시기,
그러나 사회 분위기상 그런 것을 표현하면 탈선 청소년으로 몰아가던 시기에
'평생 동정'만을 강조한 성모 신심이나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자 성소를 더 거룩한 성소인 양 떠받들던 교회 분위기가
가치관을 형성하던 시기에 편향된 잣대를 내 안에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오늘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켰는가?
내가 오늘 새로 사들인 물건은 필요에 의한 것인가, 욕구에 의한 것인가?
다 먹지도 못하는 식량을 비축하고, 또 남겨서 버리는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나?
하늘과 땅과 물과 공기를 조금 덜 더럽히는 방향으로 살았는가?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아니어서, 여기는 아니어서 괜찮아'라는 비겁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먹고 살만 하다고, 먹고 살기 어려운 가난한 이웃들을 잊고 살진 않았는가? 등
이제는 이런 내용으로 더 많은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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