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궁시렁궁시렁

지는 잎에는 지는 해가

종이-배 2019. 11. 12. 20:37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지는 해가 뒤에서 비치는 시간,

운전하는 내 차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먼저 가고,

백밀러를 잘못 쳐다보다가는 눈이 멀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옆 풍경,

꽃도 지고 만지면 부서질 것처럼 말라가는

내 피부의 각질 같은 늙은 나뭇잎들의 처량한 흔들림.


그런데, 순간 그 나무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기쁨에 겨워 온몸을 떠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의 해는 그냥 지지 않았다.

지는 해는 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봐주고 가서

그들의 중년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만들어 주었음을...


피어나는 새싹에게는 떠오르는 해가,

저 잘난 줄만 알듯 하늘로 뻗어가는 신록의 여름에는

힘차게 천지를 밝히는 건장한 해가,

이제 시들어 떠나야 하는 나뭇잎에게는

지고, 사라지고,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해가,

그렇게 때마다 어울리는 은총을 주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