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성당이 없어졌다

종이-배 2017. 8. 27. 09:21

2017년 8월 27일 일요일


이십 여 일 전, 관평동 성당 옆에 있는 품앗이생협 매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성당이 없어졌다!

연차 휴가를 썼던 규진이 생일에도 잠깐 들러서 성체조배를 하고 나왔던 곳인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갔는데 건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건물을 부순 폐기물들만 쌓여 있었다. 가슴이 내려앉고 찌르르 아파온다.

대전에 내려와서 낯선 곳에서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찾았던 성당,

조립식 건물이었으나 소박하고 정들었던 성당,

깊이 있고 영성적이던 강론 덕분에 주일미사가 더 기다려졌던 성당,

아픈 다리로 한 시간 넘게 걸어다니실 만큼 어머니에게는 소중했던 성당,

그래서 어머니의 마지막 장례미사도 그곳에서 했고 나는 그곳에서 성모님을 만났던,

바로 그 성당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성당을 새로 짓는다는 말을 들어왔고, 얼마 전에 연수원 부지 축성식을 했다는 기사도 읽은 터라 짐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참으로 마음이 허전했다.

이런 마음을 성당에 다니는 햇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햇살 역시  성전 건립과 관련해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건립 기금을 많이 낸 사람이 은근히 대접받는 모습도 보이고, 매주일 주보에 올려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도 한다. 기금 봉헌 때문에 부부싸움도 한단다.

햇살의 말을 듣고 주보를 보니, 500만원이라는 큰 단위를 한 구좌로 책정하고, 그것을 봉헌하거나 약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매주일 주보에 올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주임신부님이 얼마 냈다는 내용도 있는데, 그걸 보니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구사제는 가난을 약속하지는 않으니 뭐라 할 수 없으나, 사실 사제라 함은 개인적 재산뿐 아니라 전 생애를 봉헌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생애는 모두 봉헌했으되 가진 돈은 다 봉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사제인가? 그래서 '사제인 내가 이만큼 냈으니 당신들도 이만큼은 내시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 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게다가 '하느님은 다 아신다'라는 문구를 기금낸 사람들 명단과 함께 실어 놓은 것은 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느님이 다 아시는데 뭐하러 주보에 내지? 이것은 과부의 동전 두 닢이 아닌 부자가 거들먹거리면서 내는 모습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했다.

나는 이사를 하고 본당 교적을 옮겼으니 '남의 본당일'이며, 교구에서 잘 식별해서 하시는 일이겠지,라고 생각하려 하기는 하지만, 과연 이렇게 성당을 짓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며 빠빠가 안내하는 복음화의 길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일회용 컵 하나 쓰는 것조차 조심스레 사용하게 되는 오늘날, 성당은 그 건물의 수명이 저절로 다할 때까지 고쳐쓰고 아껴쓰고 다시쓸 수는 없는 것일까? 신자수가 많아져서 그런 거라면 미사를 더 자주 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성당을 꼭 이렇게 신자들을 쥐여짜서 지어야만 하는 걸까? 자꾸자꾸 더 의문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