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2일 일요일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부활시기가 끝나면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성체성혈 대축일로
어느 주일이 먼저인지 앞뒤도 헷갈리는 '대축일 시리즈'가 쭉 이어져야 비로소 긴 연중시기로 들어가는데,
그 여러 개의 대축일 중에서도 가장 강론의 감흥(?)이 덜한 날이 바로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미사에 가기 전에 '오늘도 그 바닷물 퍼담은 성인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삼위일체는 신비이고 믿을교리이므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어라 라는 식의 강론을 듣는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미사 시작 전에 잠깐 주보를 훑어보니 평신도가 쓰는 복음해설에도 역시나 그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신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해석하려고 했을까 싶지만 딱히 설명하거나 검증할 수도 없고,
신부님들도 맨날 똑같은 예화밖에 들 수 없고, 그냥 신비이니 믿으라고 밀어붙이는 걸 보면
나 같은 한낱 평신도가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을 거라는 건 알겠으나,
신학자들처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있어야
진정한 대축일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접을 수 없으니,
정말 삼위일체 대축일은 뭐하는 날이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서 떠오른 건, '셋'이라는 숫자다.
익히 잘 알려진 바대로 그 셋이라는 숫자가 담고 있는 완전성.
'천지인'으로 표현되는 셋이나,
'성부 성자 성령'으로 표현되는 셋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삼위일체 대축일은 하느님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경탄하는 축일이 아닐까...
이 신비를 내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그야말로 바닷물을 다 퍼담을 때까지 한다고 해도 불가능할 일일 것이나,
하늘-땅-사람으로 이해되는 우주의 신비를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그리스도의 육화로 인하여 바로 그 우주의 온전한 원형을 지닐 수 있게 된,
'참 나'를 향한 감사를 드리는 날이 바로 오늘 이 삼위일체대축일이 아닐는지...
오늘 강론은 시골 성당의 작은 성전을 마련하려고 오신 신부님이 하셨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가엾어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성부의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 성자의 마음은 '가엾어하는 마음', 성령의 마음은 '들으시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내멋대로 삼위일체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집 나간 아들을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성부의 마음을 보고,
예수님은 온 생애가 측은지심으로 가득차 있으셨고,
성령께서는 잘 들으시고 잘 들어주시는 분이기 때문...
다음주에 '살과 피'로 함께 하시는 성체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나면 예수성심성월로 들어선다.
이번 예수성심성월에는 이렇게 기다리고, 가엾어하고, 들으시는 그 마음 안으로 더 잠겨보아야겠다.
신비를 이해하려는 것은 바닷물을 하염없이 퍼내는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으나
그냥 아름다움 안에 잠겨 보고 그 마음을 느껴보는 것은
어쩌면 바다 같은 하느님 안에 나를 잠시 맡겨보는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참나, '종이배'의 삶일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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