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살기/밑줄 긋기

<슈베르트와 나무>에서

종이-배 2016. 6. 6. 17:29

2016년 6월 6일 월요일

 

<슈베르트와 나무>(고규홍/휴머니스트)를 읽었다.

글쓴이를 처음 알았던 것은 몇 해 전 서남재단 세미나에서였다.

나무를 잘 알지 못하던 내게 나무를 가깝게 알게 해준 강의여서,

그후 글쓴이의 책은 나오는 대로 찾아 읽었던 것 같다.

책에서나 인터넷으로 날아드는 엽서를 읽을 때마다 글쓴이가 의도적으로 찾아쓰는 것 같은

아주 예쁘고 알맞춤한 우리말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한자어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어렵게 쓰지 않으려는 의도를 넘어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그런 우리말들을 일부러 찾아서 쓴 느낌이 참 좋았다.

마치 비유하자면,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토종 야생화를 보전하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책은 나무 인문학자인 글쓴이가 시각이 없는 피아니스트와 함께한 작업의 결과물로서

나무와 음악의 결합을 넘어, 다른 감각으로 나무를 사유하는 두 사람의 만남이 엮여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달팽이의 별>이라는 감동어린 다큐가 떠올랐다.

베껴쓰는 것이 어려워 되도록 밑줄을 덜 그으려 애쓰며 책을 읽었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그어졌던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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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오는 분명한 신호가 있다.

소리도 있다. 천둥처럼 강렬할 수도, 미풍처럼 고요할 수도 있다.(52)

 

줄기에 오르는 물소리뿐 아니다. 나무는 제 향기와 빛깔에 따라 다른 소리를 가진다.

바람이 몰래 다가와 잎을 스쳐 지나는 소리가 나무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 또한 분명히 다르다.

나무마다 다른 소리를 구별하는 사람을 나는 안다.(53)

 

'간절하면 들려요.'(53)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다를 뿐, 치유가 절실한 건 아니다.

더구나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75)

 

"무언가를 만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 마리로르는 만진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을 동일시했다.

촉각으로 느끼는 사랑이다. 시각으로 주고 받는 사랑법과는 전혀 다른 사랑법이다.(98)

 

언제나 사랑은 결심이다. 상대를 사랑하겠다는 결심 없이 사랑은 시작되지 않는다.(99)

 

"한 생애를 마친 열매는 아주 단단해요. 그리고 새로 다음 생애를 시작하려는 꽃봉오리는 말랑말랑하네요.

꽃봉오리 안쪽에는 틈이 많은가 봐요.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면 그런 틈,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딱딱한 열매와 말랑말랑한 꽃봉오리 사이의 거리를 촉각으로 감지한 김예지는

삶과 죽음의 거리를 측량했고, 그 안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아냈다.(119)

 

모든 생명력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요소에 대한 치열한 투쟁과 방어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124)

 

열매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 모든 생명은 저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정도만 확인해도 충분했다.(125)

 

관찰이라는 행위는 철저하게 시각 위조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지 싶다.(134)

 

입에서 입으로 진리를 전하던 시대에는 진리를 파악하는 중요한 감각이 청각일 수밖에 없었다.(171)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시각이 지식세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감각으로 떠오른 가장 중요한 계기를 문자의 발명으로 설명한다.(172)

 

청각은 신앙 감각이며 신앙에 대한 통찰력은 시각에 힘을 부여하고, 촉각은 사랑의 결합으로 파생되며,

사랑의 즐거움에서 미각의 힘이 생겨나고, 희망에서 후각의 힘이 파생된다고 강조했다.(174)

 

나무는 빛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다.(177)

 

"... 잎이 마르기 시작하니까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나무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짐작할 수도 있어요."(188)

 

음악가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서 표현한다.

감상자는 음악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하더라도 그가 듣고 싶은 만큼 느낀다...

결국 음악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음악 속에 굉장히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생각한다.

음악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한다...

음악의 말 혹은 음악의 텍스트가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음악처럼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늘 말을 하지만, 그 말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나무는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제 몸뚱이 안에 무수히 많은 말을 담고 바라보는 사람에게 들려준다.(193)

 

하지만 나무의 삶은 나무만이 아는 거죠. 우리는 관찰자에 불과하지 않은가요? ...

작곡 의도는 작곡가만이 알 수 있죠. 우리가 분석한 건 주관적 관점일 뿐이에요. 느낌이죠.

나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항상 열려 있다는 것 말이에요.(194)

 

지금 우리의 삶이 늘 정답은 아니다, 삶에는 다양함이 반드시 널려 있다,

세상에 그런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나는 피아노로 이야기하고 싶어요.(197)

 

간절함 혹은 성의가 문제였다.

시각이든 청각이든 감각의 활동은 그러니까 관심과 성의의 정도에 따를 수밖에 없다. ..

김예지는 그날, 내가 어떤 감각으로 나무를 관찰하느냐고 물었을 때, 꼭 일정한 감각을 이용한다거나

누구에게나 효용이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대상을 얼마나 알려 하는가 하는 관심, 그리고 대상에 대한 성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각을 활용하는 사람이라 해도 관심도 없고, 성의도 들이지 않는 대상이라면 결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꼭 그랬다.(200)

 

"나무에 접근하는 감각에는 개인차가 있지 않을까요?

나무를 느끼려는 의지와 성의가 중요한 거지, 어느 감각을 이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217)

 

빛 없는 세상에는 빛의 세상에 없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빛깔이 살아 있었다.(222)

 

"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어요? 뭐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나무의 크기뿐 아니라

나무의 생명 에너지 같은 기운이 분명히 내 주위에 드리워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사람을 압도하는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어요."(254)

 

매클린톡은 대상을 정성껏 오래 바라보면 마침내 그 대상은 자신이 감춘 비밀을 가르쳐준다고까지 했다.

대상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는 생뚱맞아 보이는 이야기다.

그녀는 언제나 '대상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대상이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하도록'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개발하는 일이라고 했다. 생명의 느낌!(285)

 

다르다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옥수수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마음의 눈을 쓰든,

비운의 이 땅에서 악착같이 살든 남루하게 할든,

나무를 눈으로 보든 귀로 보든 마음으로 보든.

다르다는 것,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289)

 

"... 시각을 활용하는 사람들처럼 '본다는 감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대상을 느끼려 애써야 해요. 그뿐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밖에 없어요. ...

오래 전부터 알았던 대상이라면 그때와 다른 지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전혀 몰랐던 대상이라면 새로운 느낌으로 대상을 해석하게 되는 거죠." ..

시각이 아닌 오감은 물론이고, 이전의 사유 경험까지 끄집어내 대상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다.

시각을 내려놓고 그녀는 사유를 얻었다.(296)

 

'감각이라는 게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건데, 그동안 이런 연습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300)

 

 

꽃을 보다(看花)

세상 사람들은 모양과 빛깔로 꽃을 보지만(世人看花色)

나는 오로지 생명의 기운으로 꽃을 바라본다오.(吾燭看花氣)

꽃의 생기 온 천지에 가득 차오르면(此氣滿天地)

나도 따라서 한 떨기 꽃 되리라.(吾亦一花卉)

-박준원(朴準源, 영조15~순조7)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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