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또 다시 일터에서

발랄이가 해준 실종유괴예방교육

종이-배 2020. 7. 26. 12:49

'발랄이'가 돌아왔다. 어제 집 앞에서 다시 만난 발랄이, 얼마나 반갑던지! 발랄이는 작년쯤 우리집 지하 스튜디오 앞에서 태어나, 이듬해인 지난 부활절에 우리집 베란다에서 처음으로 몸을 풀고 새끼 네 마리를 낳은 암컷 길냥이다. 사람을 별로 개의치 않고 뛰어다녀서 '똥꼬발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줄여서 '발랄이'라고 부른다. 이 녀석이 네 마리 새끼를 낳았을 때, 우리 부부는 산부인과 신생아실 앞에서 손주손녀 들여다보는 할애비, 할매 같았다. 밥도 그 앞에서 먹고, 고물고물거리는 녀석들 보고 싶어서 퇴근을 서둘렀던.

그런데 어느날, 해질녘 빛이 강하게 드는 베란다가 더웠는지, 발랄이는 새끼들을 다 데리고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었다. 옆집 계단참 밑,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만 우리집을 들락거리며 산후조리를 했다. 그렇게 두어 달, 새끼들 중 비실비실했던 두 마리는 일찍 세상을 뜬 듯하고, 자기를 꼭 닮아 똥꼬발랄한 두 마리만 대동하고 우리집 근처를 어슬렁거렸었다. 그러다 일이 난 것은, 세상천지 분간 못하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남편의 전기차 아래에서 쉬고 있었던 차에 남편이 차를 몰고 나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던 녀석들은 당황해하다가(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 남편 차에서 뛰어내렸는데, 다행스럽게도 두 마리가 뛰어내린 곳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쥐도새도 모르게 살아 있던 남은 새끼 두 마리를 몽땅 잃은 발랄이는 사라진 새끼를 부르며 울어댔다.

사실 발랄이보다 마음속으로 더 많이 울었던 사람은 남편이다. 마치 자기 잘못으로 엄마와 새끼들을 생이별시켰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어두워지고 어쩔 줄 몰라했다. 한참 생각하다가 플랜을 세웠다. 플랜A는 엄마를 포획하여 새끼들 곁에 가 있다가, 새끼들까지 포획하여 다시 되돌아오는 것, 플랜B는 엄마를 새끼들이 내린 곳 근처에 풀어주어 다시 그곳에 보금자리를 찾게 하는 것. 그후 플랜A는 실패하고 플랜B가 성공하였기에, 결국 발랄이가 새끼들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던 남편은 자기만의 플랜C를 실행하여, 발랄이와 새끼들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다. 근 보름간의 긴 마음고생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일을 겪으며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발랄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발랄이의 마음을 알려주었다. "얘들아, 발랄이 새끼들처럼 아무 차에나 덥석 올라타면 안 된단다. 그렇게 헤어지면 엄마와 아이들이 다시 만나기가 참 어려워져. 발랄이가 새끼들을 잃은 동안 얼마나 마음아파 했는지 몰라. 새끼들도 그렇고. 얼굴이 다 수척해졌더라."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발랄이 얘기하면서 아이들에게 낯선 차는 절대 타서는 안 된다고 실종유괴예방교육을 했다고. 그랬더니 남편이 한마디 덧붙인다.

"잘했네. 한 가지 더 말하지 그랬어?"

"뭐?"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는 제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엄마가 찾아온다고."

'그러네. 발랄이 새끼들이 그나마 떨어진 자리 주변을 맴돌았기 때문에 결국 만난 거네. 고양이나 아이들이나 실종유괴를 예방하는 수칙은 똑같네. 고맙다, 발랄아.'(2020.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