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나들이를 가서 예쁜 꽃들을 보면 꺾어 "엄마에게 줄 거야." 하고 챙긴다. 간혹 잊을 때도 있지만, 엄마에게 주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은 바구니 안에서 시들어버린 꽃을 찾아내 엄마에게 건넨다. 시든 꽃일지언정, 그 꽃을 받는 엄마들에게는 어느 꽃다발보다도 값지고 아름다운 선물이었으리라.
나들이 때만 그러는 게 아니다. 놀이 시간에도 엄마에게 준다면서 뭔가를 그리고, 만드는 아이들이 많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종이접기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랑하는 엄마, 아빠나 친구에게 주겠다고 열중해 있는 모습을 보면, 선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함께 생활하는 교사도 그런 아기자기한 선물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일곱살 정도 되면, 이런 선물을 남발하고 악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자기가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정리할 시간이 되면 교사에게 "이거 선물!"이라고 툭 던지는 것이다. 또는 놀리는 말이나 장난스러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려서는 선물이라고 주며 깔깔댄다. 그럴 때면, 아무리 마음 넓은 교사라도 마음이 상하기 마련.
또 한 방에서 두 명 이상의 교사가 함께 생활할 때는, 간혹 아이들이 교사를 대놓고 비교할 때가 있다. "넌, 별꽃이 더 좋아, 종이배가 더 좋아?" "난 별꽃."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치를 살금살금 본다. 또 나한테 직접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난 딸기나 도토리하고, 종이배하고 바꿨으면 좋겠어."
"그래애?"
"종이배가 일찍 가고, 딸기와 도토리가 하루종일 있고."
"그래? 그 말 들으니 종이배가 섭섭한데? 그런데 왜 그랬으면 좋겠니?"
"그럼 혼나지 않잖아."
'.... 딸기는 일주일 전에 나온 실습교사이니, 너희한테 친절할 수밖에. 그리고 나도 도토리처럼 체력이 좋다면, 너희들하고 하루종일 몸으로 놀아주고 싶지. 하지만 도토리도 반일 교사니 그렇게 하는 거지, 하루종일 있어봐라. 너희들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나. 그리고 나한테 혼난다고? 요즘 세상에 아이 혼냈다가는 무슨 소릴 들으려고? 와, 진짜 너무하네.'
겉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토막처럼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순간 속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제는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두 아이가 와서 물었다. "종이배는 무슨 과일 좋아해?" "과일은 다 좋아하는데, 글쎄, 포도?"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 일은 금방 잊어버렸다. 그런데 점심 놀이시간에 두 아이가 소곤대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종이배는 절대 보여주지 마." 하는 말이 들려온다. 이 말을 들으니 또 속이 뒤집힌다.
'그래, 나를 그렇게 따돌리겠다는 거지? 흥! 나도 너희들말고 예뻐해 줄 아이들 많다고!'
그러다가 한참 지나 정리시간이 되었을 때, 두 아이가 웃으면서 내게 "이거 선물!"이라면서 이면지로 접은 봉투를 하나 내민다. 순간, '너희 또 정리하다가 버리려고 한 거, 나 주는 거 아냐?'라는 의심이 스쳤지만, 겉봉투에 '종이배 선물'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고마워." 하고 받았다.
"빨리 열어 봐."
아이들의 재촉에 열어보니, 색종이로 예쁘게 접은 종이배와 그림이 들어 있다.
그림에는 우리집이라면서 집도 그리고, 연못에 종이배도 띄워놓고, 마당에는 오전에 물어본 포도나무가 그려져 있다. 꽃밭에는 여러 가지 꽃들과, 너무 예쁘게 그린 나까지.
'너희, 나한테 깜짝 선물 줄려고 보면 안 된다고 그랬던 거구나! 그리고 이거 그려줄려고 나들이 때 좋아하는 과일을 미리 물어봤던 거고! 그래, 이런 힘으로 살아가는 거지, 인생 뭐 있냐.'
아이들을 오해했던 미안함과 자잘한 선물의 자잘하지 않은 고마움에 마음이 울컥한다.(2020.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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