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고든 뉴펠트, 가보 마테 / 김현아 / 북라인
- 우리는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 부모가 되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6)
- 우리는 바람직한 부모의 상에 부응하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이에게 간청하거나, 구슬리거나, 매수하거나, 보상하거나, 벌을 준다. 부모로서 우리는 상처도 입고, 거절도 당한다. 우리는 부모 역할에 실패한 자신을, 혹은 고집불통인 아이를, 아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을, 엄격하지 못한 학교 규율을 탓한다. 그러다 무력함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매우 단순하고 권위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이 이 시대의 풍조다.(15)
- 아이를 성공적으로 양육하고 위로하고 인도하고 지도하려면, 아이가 부모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우리가 어른이라거나, 자신을 사랑한다거나,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알고 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부모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17)
- 육아의 비결은,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존재인가'에 있다.(17)
- 부모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홈 베이스이고, 실패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피난처이며,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육아 기술도 이 애착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 부모가 변한 것도, 아이의 본성이 변한 것도 아니다. 변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문화다.(18)
- 한 문화의 본질은 관습과 음악, 의복, 의식, 이야기에 있다.(21)
- 또래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 어른들을 대신할 경우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결핍되는 부분이 아이에게 가장 막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이다.(23)
-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위험하다.(25)
- 육아와 교육의 중심에 관계가 있듯이 해결책의 핵심도 관계에 있다. 아이와의 견고한 관계에 뿌리를 둔 부모들은 직관적으로 아이를 키운다. 이들은 기술이나 안내서에 의존하지 않고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행동한다.(26)
- 애착이란 의식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중력은 발을 땅에 딛고 서게 하고, 행성은 궤도에 머물며, 나침반은 자기장의 북극을 가리키는 것처럼, 우리는 애착의 힘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30)
- 가장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지향의 형태는,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파악하는 일이다.(32)
- 애착의 첫 임무는 아이가 붙어 있던 사람한테서 떨어져 '나침반compass point'을 형성하는 것이다.(33)
- 예수는 경쟁 관계의 애착이 양립할 수 없음과 애착의 양극성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한 편을 사랑하든지,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마태 6,24) 또래들에게 충실할 때 아이는 우리 편에 서거나 우리 말을 듣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일부러 우리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본능,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파괴된 본능을 따르는 것뿐이다.(47)
- 다른 사람들과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애착 마을이라고 부르는 환경, 즉 어른들의 양육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51)
- 사회의 세속화도 애착 결핍을 불러 왔다. ... 교회에서조차 또래 간의 상호작용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 예로, 대부분의 교회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족보다는 연령별로 신도들을 그룹화한다. 유아부와 청소년부, 장년부에 노년부까지 나누기도 한다. 애착의 중요성과 또래지향성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연령별로 그룹화하는 것이 당연하기만 하다. 많은 종교 단체가 본의 아니게 다세대간 결합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53)
- 놀이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특히 어른과 아이들을 연결해 주는 문화의 도구였다. 이제 놀이는 나란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는 개별적인 활동이 되었다.(57)
- '부모의 힘power or parent' .. 육아에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결여된 것은 힘이지, 사랑이나 지식이나 헌신이나 기술이 아니다. ... 많은 사람이 힘power과 무력force을 혼동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힘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육아와 애착에 대해 말할 때의 힘은 '부모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권위'를 뜻한다. 자연적인 권위는 강압이나 무력이 아니라 적절하게 조율된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 부모의 힘은 아이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바람직한 태도를 이끌어내며, 부모에 대한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아이의 협력을 보장한다. 이런 네 가지 능력이 빠지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강압이나 매수뿐이다.(68-69)
- 부모의 힘은 기술이 아닌 애착 관계에서 나온다.(71)
- 인간은 의존 기간이 길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부모에게서 친척과 이웃, 같은 종족이나 마을의 연장자들에게로 애착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모두, 차례대로, 아이가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75)
- 육아를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즉 보살핌이 필요한 의존적인 존재와 그를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 아이와 어른 사이의 살아 있는 애착이 그것이다.(75)
- 우리는 적당한 요령을 배우지 못해서 아이가 고분고분하지 않는 거라고, 부모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서 아이가 우리의 권위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거라고 성급하게 가정한다. 우리는 중요한 것은 부모의 기술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있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 부모-자녀 사이는 관계가 우선이지, 습득해야 할 기술이 우선이 아니다. 애착은 배워야 하는 행동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관계다.(77)
- 존 보울비... "어린이나 청소년과 부모 사이의 역할 전도는 아주 일시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부모의 병리 현상의 징후일 뿐만 아니라 아이의 병인이 된다." 부모와의 역할 전도는 아이의 세상에 대한 관계를 왜곡한다.(85)
- 아이의 발달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부모와의 신체적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점차 정서적 결합과 친밀감으로 발전한다. 부모를 눈앞에 붙잡아 두려던 열망은 부모가 있는 곳을 알고 싶은 욕구로 바뀐다.(91)
- 아이는 강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을 자신의 모범으로 받아들인다.(92)
-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동기는 아이 자신의 특성보다는 아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이가 '나쁘다면', 바로잡아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다.(96)
-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부모에게 착한 존재가 되려는 아이의 의지이지, 부모의 기대대로 행하는 아이의 능력이 아니다.(99)
-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차단함으로써, 대항의지는 아이의 자발적인 동기 부여와 기호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대항의지는 모든 아이, 심지어 적절한 애착을 형성한 아이에게도 존재하는 정상적인 인간 역학이다.(105)
- 욕구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은 끈질긴 면만 의지와 비슷할 뿐 다른 공통점은 없다. 집착은 무의식에서 나와 개인을 지배하는 반면, 진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줄 안다. 아이의 바항은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의지의 부재다. .. 대항의지는 아이가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일어나는 것이다.(106)
- 진정한 독립으로의 이행은, 아이가 어른들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 성숙한 인간은 뒤섞인 감정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독립을 원하는 동시에 애착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반된 마음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107)
- 바위를 움직이든 아이를 움직이든 우리는 힘이 부족할 때 본능적으로 지렛대를 찾는다. 이때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매수, 아니면 강압이다. ... 보상이나 처벌과 같은 인위적인 방법은 아이가 일시적으로 말을 듣게 할 수는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바람직한 행동을 고유한 인격의 일부로 만들 수는 없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기, 다른 사람과 나누기, 선물이나 카드 쓰기, 방 청소하기, 숙제하기, 피아노 연습하기 등 모든 행동은 강압적으로 하게 할수록 자발적으로 할 가능성은 줄어든다.(111)
- 데시 박사는 "보상은 행동의 가능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보상이 계속 주어질 때만 그렇다. 보상을 중단하면 행동도 멈춘다."고 했다.(112)
- 아이의 이런 대항의지를 힘의 행사로 잘못 생각하기 쉽지만, 그 너머의 약화된 애착을 인식해야 한다. 반항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 아이의 대항의지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부모-자녀 관계를 강화하고 무력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다.(113)
-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서 첫 4년 동안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양이, 나머지 공고육 전체를 통틀어 흡수하는 양보다 많다고 한다.(117)
- 건강한 문화에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인간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지키는 의식과 관습, 다양한 방법들이 포함되어 있다. 발달한 문화에는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미술과 음악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보다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이 있어야 하며, 위대함을 고취시키는 모범이 있어야 한다.(118)
- 또래지향성이 만들어 낸 문화는 다른 문화와 잘 섞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문화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와 같다.(121)
- 부모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상처를 잘 입지 않지만,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쉽게 상처를 입는다. 애착에는 안과 밖이 있다. 상처 입기 쉬운 취약성이 안이고, 무엇에도 끄떡 않는 초연함이 밖이다. 애착은 방패인 동시에 검이다.(130)
- 어른지향적인 아이들이 부모와 교사들과의 관계에서 더 상처입기 쉬운 것처럼,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은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더 상처 입기가 쉽다.(131)
- 아이가 또래들의 무자비함에 상처를 입고 있다면, 그것은 과거보다 현재의 아이들이 더 잔인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또래지향성으로 인해 아이들의 서로의 조롱과 감정적인 공격에 더 취약해졌기 때문이다.(132)
- 아이들을 스트레스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카리스마 있는 어른-아이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의 존재'라고 결론내렸다.(133)
- 돌보는 어른들과 애착을 잘 형성한 아이일수록, 취약성에 휘둘리지 않고 또래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 또래들이 덜 중요할수록, 또래 관계의 취약성을 견디기가 쉬워진다.(139)
- 우리는 아이가 포옹을 원할 때, 아이가 우리를 안는 것보다 더 포근하게 아이를 안아 줄 수 있다. 우리는 아이를 우리의 사랑 안에서 쉬게 함으로써 아이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아이가 잠을 자거나 학굥 가는 일과 같은 분리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친밀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아이를 도와줄 수 있다. 이렇게 성숙은 '의존과 애착을 통해 독립과 진정한 분리로 나아가는' 역설의 과정이다.(150)
- 로저스는 양육이란 "소유욕도 아니고, 개인적인 만족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네가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면 너를 돌봐주겠다가 아니라, 그냥 나는 너를 돌본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 아이의 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전환을 위해 아이는 충분한 안정감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껴야 한다.(151)
- 깊은 사랑에 빠져 그 안에서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면, 에너지의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막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관심과 호기심을 되찾고, 개성과 독창성이 살아나며,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한다.(152)
- 식탁에 앉지 않는 아이에게는 음식을 줄 수 없다. 영양분이 전달되려면 탯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애착 욕구를 기꺼이 채워주고, 또 채워줄 수 있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애착을 형성하지 않는 아이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기란 불가능하다.(153)
- 아이를 움직이는 것도, 그리고 에너지를 하나의 발달 과제에서 다음 과제로, 애착에서 개별화로 전환시키는 것도 정서다.(154)
- 아이들이 결핍된 것을 느끼고 그 공허함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건강함을 나타낸다. 아이들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런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아빠가 보고 싶어요," "엄마는 제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155)
- 아이의 요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고삐 풀린 집착에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한다.(157)
- 부질없음의 눈물은 실제로 무언가 끝이 났다는 해방감을 가져온다. 이는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놓아야 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뇌가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159)
- 사람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좌절감이다. 좌절감은 공격성의 연료다.(167)
- 좌절감을 유발하는 요소는 많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착이므로, 그들의 좌절감의 최대 원천은 뜻대로 되지 않는 애착이다. 즉 접촉의 부재와 단절된 관계, 너무 잦은 분리, 무시당하는 느낌, 이해의 부족 등이 그것이다.(168)
- 일단 부질없음의 감정으로 전환되면, 유아는 안정을 찾는다. 좌절감이 이렇게 전환되지 않으면, 유아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뇌에 무언가 되지 않는 일들을 새겨놓아야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느껴야' 한다. ... 부질없음의 가장 공통된 감정은 슬픔과 실망, 비탄이다. 다행히 우리가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웠더라도 내적으로 부질없음을 느낄 수 있다면, 슬픔과 실망의 감정에 의해 순응이 일어난다.(173)
- 아이와 어른들 사이에 적절한 역할 분담이 분명히 있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 대상이 아이와 아이가 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 있다.(184)
- 보살핌이란 정서적으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적절함과 죄책감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185)
-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해줌으로써 혼란과 좌절감을 피하려고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불가능한 일에 부딪힐 때 따르는 필연적인 좌절감에 결코 맞서지 못한다. 아이들은 좌절감을 부질없음의 감정으로 전환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며 순응하게 되는 경험을 박탈당한다. 또 다른 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존중을,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으로 혼동하기도 한다.(186)
- 성은 최후의 애착 행동이고, 독점의 시작이며, 연인의 종결점이다. 성은 그 사람이 현명한 만큼 안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또래지향적인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것, 즉 성숙이다. 성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으이 필요조건이다. 성숙의 첫 열매는 개체로서의 독립이다. ... 누군가의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청소년은 위험할 정도로 성에 영향을 받기 쉽다. ..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에게 성은 함께 추는 춤이 아니다.(208)
- 청소년의 성은 성적 실험이 아니라 정서적 절망과 애착 허기다.(210)
- 아이들은 능력은 있지만 동기가 없고, 똑똑하지만 학습은 부진하며, 영리하지만 지루해한다 ...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돈이나 교과 과정이나 정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아이의 학습 능력을 결정하는 데에는 네 가지 본질적인 자질이 중요하다. 즉 타고난 호기심과 통합적 사고, 교정을 통해 유익함을 취하는 능력, 교사와의 관계가 그것이다.(213)
- 호기심은 아이가 타고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창의적 과정emergent precess의 산물이다. 바꿔 말하면, 아이가 애착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발달의 부산물인 것이다.(214)
- 통합적 학습을 위해 아이는 두 개의 마음, 즉 뒤섞인 감정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해야 한다.(215)
- 실패는 학습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고, 교정은 교육의 주요 도구다.(217)
- 지금 같은 전문화와 전문가의 시대에는 교육을 교사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학습을 촉진하고 또래지향성을 방지하는 애착의 역할을 인식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부모와 교사, 아이와 접촉하는 모든 어른이 똑같이 분담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224)
- 일정 시간 분리되었다 다시 만날 때는 아이를 품 안으로 모으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 인사는 두 눈과 미소와 끄덕임을 이끌어내야 완전하게 완성된다. .. 아이를 품 안으로 모으는 일은 잠자는 동안 분리되어 있다 만날 때도 중요하다.(231)
- 우리의 눈이 기쁨으로 빛나고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난다면, 거절하기 힘든 결합으로 아이를 초대하는 셈이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신호를 보내면, 대부분은 자신이 우리에게 특별하고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붙잡고 싶어할 것이다.(233)
-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기쁨을 전하는 문제다. 즉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때 전해야 한다. .. 아이를 진짜 망치는 길은 그의 진정한 욕구를 무시하는 것이다.(235)
- 칭찬이 과해서는 안 되고, 아이의 의욕이 다른 사람들의 감탄이나 긍정적인 의견에 좌우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자아상이 성취나 순응을 통해 얼마나 잘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따지는, 우리의 인정을 받는 일에 달려서는 안 된다. 아이의 진정한 자존감의 토대는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을 아이가 느끼는 데 있다.(237)
- 우리는 아이들의 성숙에 대해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으려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독립은 성숙의 열매다.... 우리는 아이들의 키를 늘릴 필요가 없다. 그저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 인생에는 때가 있다. 겨울을 건너뛰고 봄을 맞을 수는 없다. .. 의존을 거부함으로써 독립을 얻을 수는 없다. 의존 욕구가 충족될 때만 진정한 독립의 추구가 시작된다.(239)
- 유능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독립심을 강요하는 대신 아낌없이 도움을 준다. 학생들이 자신의 결핍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교사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240)
- 하루를 시작할 때 방향성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만 해도 아이들과의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물론, 아이들의 정체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243)
- 부모는 아이들에게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거짓말은 아이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가 거짓말을 들을 때,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해도, 우리 내부메는 그 거짓말을 간파하는 무언가가 있따.(257)
- 연인들이 그렇듯, 상대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신체적 부재를 훨씬 견디기가 쉬워진다.(259)
- 육아란 무엇보다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는 전략이 아닌 직관에 기초한다. 이 일곱 가지 원칙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육아의 직관을 일깨우거나 뒷받침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 전략이 아니라 열정과 원칙, 통찰이다.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따라온다.(276)
- 훈육은 적대적이어서는 안 된다. 야생적이고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부모의 훈육은 관계의 맥락에서만 효과를 발휘한다. 이따금 내 앞에서 좌절감에 빠져 자기 아이를 흉보는 부모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잠시 멈추고 아이의 감정을 느껴본 뒤, 다시 내게 걱정거리를 말해보라고 한다. 아이의 편에서 방법을 찾으면,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다. 성숙의 과정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연은 우리 편이다. ...부모의 임무는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다.(277-278)
- 안타깝게도 힘을 동원하는 방법은 역효과를 부른다. 즉 강압은 대항의지를 끌어내고, 처벌은 보복을 불러오며, 고함소리는 귀를 닫게 하고, 제재는 공격성을 유발하며, 타임아웃은 정서적 탈애착으로 이어진다. 훈육을 위한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훈육의 강도를 높일 게 아니라 다른 훈육 방법을 찾아야 한다.(297)
- 열쇠는 통찰력이다. 아이가 무엇에 반응하즌지를 보려면, 일단 문제 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결정된다. 아이가 제멋대로 군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싫어하는 아이의 행동을 고치는 데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게 된다. 대신에 아이가 단순히 자신의 충동에 휩쓸리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애초에 그런 충동을 유발한 상황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누군가에게 주먹질을 하는 행동만을 보면, 공격성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대신에 아이가 좌절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그를 좌절하게 만든 상황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 자라는 요구에 아이가 저항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를 반항의 문제로 다루게 된다. 대신에 어린 아이가 분리나 어두움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우리는 잠자리에 드는 아이의 두려움을 덜어주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반항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당장 버릇을 고쳐주고 싶어진다. 대신에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 때문에 대항의지가 분출된 것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가하는 압박의 수위를 낮출 것이다.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를 단순히 어른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그의 '나쁜' 버릇을 놓고 아이와 맞서게 된다. 대신에 아이의 타고난 수줍음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우리는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할 것이다.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보면, 우리는 비판적이고 엄격한 태도로 그의 거짓말에 맞서게 된다. 대신에 우리의 사랑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서 우리의 분노와 실망을 감수하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거라는 점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아이를 절대 안심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썼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현실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다."(298-299)
-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은 쉽게 흥분하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늘 겁에 질려 있다.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공기 중에 떠도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306)
- 주요 애착 대상인 어른들의 개입 없이 무차별적으로 너무 일찍 어울리다 보면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거나, 혹은 다른 아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면서 모방하기에 이른다.(313)
- 미성숙한 사람에게 우정이란 개념은 무의미하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배려하지 않거나, 경계를 인정하지 않거나, 한 개인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 이런 개념의 우정은 상호 존중과 개성이라는 견고한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성숙에 도달하고 사회 통합 능력을 갖추기 전에는 진정한 우정은 불가능한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이런 우정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진정한 우정이 가능해질 때까지 아이에게는 애착이 필요할 뿐, 친구들이 필요하지는 않다. .. 발달상 아이들은 또래들과의 관계보다 자신과의 관계가 훨씬 더 필요하다. 즉 자의식과 내적 경험의 분리가 일어나야 한다.(314-315)
- "심심해" 혹은 "지겨워"는 너무 익숙한 아이들의 후렴구다. ... 하지만 지루함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애착 본능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을 때, 그리고 이 공허함을 채우는 자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 지루함을 느낀다. ... 지루함으로 느끼는 빈자리는 애착과 창의성의 이중 공백의 결과다.(316)
- 그런 아이에게는 또래 상호작용을 부추길 게 아니라, 어른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 다른 아이들과 노는 시간은 재미있다는 것, 이것이 전부다. 놀고 난 후에는 항상 반드시 아이들을 품 안으로 모아야 한다... 아이들은 항상 노는 법을 알고 있다.(317)
- 자존감의 핵심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는 독립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다. 자존감 문제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할 때도 자기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때도 자신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이 비판할 때도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320)
- 형제자매 관계는 같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들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322)
- 아이들을 서둘러 사회화하려고 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지내거나 혼자서 창의적인 놀이를 할 시간이 거의 없다. 우리는 아이들의 여가 시간을 놀이 약속으로-혹은 비디오나 텔레비전, 게임으로- 채우고 있다. 우리는 아이가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여지를 훨씬 더 많이 남겨두어야 한다.(322-323)
- 시기는 언제나 건강한 발달의 핵심 요소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잠재적인 위험을 지닌 경험을 다룰 때 금지는 해결책이 아니다. 금지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위험을 줄이는 비결은 시기에 있다.(361)
- 아이들은 반드시 놀아야 한다. 건강한 발달에서 놀이가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다. 어린 포유류는 모두 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는 일은 중요하다. 발달론자들은 놀이가 뇌 발달의 주 원동력이고 성장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리행위감이 처음으로 생겨나고, 내적 갈등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순응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것이 놀이다. 건강한 발달을 위해서는 놀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결과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활동이 진정한 놀이다. 진정한 놀이에서는 최종 결과가 아니라, 활동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 진정한 놀이는 승리나 득점이 아니라, 놀이 자체를 위한 것이다.(371)
-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는 또래들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괴롭힘을 탈없이 견뎌낼 수 있다. 건강한 발달이라는 장기적 목표는 또래들의 단기적 징벌보다 언제나 우선되어야 한다.(373)
- 아동기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아이답게 살아야 하는 시기다.(374)
- 아이들이 가장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아이들은 우리 눈에 비치고, 우리 목소리에서 확인되며, 우리 몸짓에 표현된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본다.(37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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