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묻고, 듣고, 걸어가는 길

종이-배 2016. 2. 21. 07:47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오늘도 여느 때처럼 전민동 성당 새벽미사에 다녀왔다.

오늘 강론은 복사를 서고 계시던 부제님이 하신다.

그동안 얼굴만 몇 차례 뵈었지,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분이다.

이제는 나이가 꽤 들었는지 저렇게 젊은 부제나 새 신부님을 보면 '존경', '탁덕'이라는 말보다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말이 더 먼저 떠오르곤 한다.

젊을 적에는 경찰관이나 군인들을 보면 든든하고 의젓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요즘에 매연 가득한 곳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을 보거나

무거운 총을 들고 훈련을 하는 군인들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 앞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나 '거룩함'이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세상에,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서 올곧게 주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하는 '젊은 총각'(^^)들이 어찌나 대견해 보이는지!

 

어쨌든 강론대 앞에 선 부제님을 보는 순간,

오늘은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고(?)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강론을 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부담스러운 만큼 열심히 정성껏 준비하셨으리라는 생각에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다.

사제가, 정해진 레시피를 보듯이 신학서적만 보고 준비한 강론인지,

정성을 기울이고 기도를 하면서 준비한 강론인지,

몇 년 전 담가 놓은 항아리에서 장을 떠내듯 같은 내용을 울궈먹는(?) 강론인지,

아니면 갓 구워낸 빵처럼 바삭바삭한 강론인지는, '들어보면' 안다.

오십 년 넘게 가톨릭 교회 안에 있다 보니, 어지간한 좋은 말씀, 훌륭한 강론은 제법 많이 들어왔기에

농담처럼 하는 '귀만 천당 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경계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사실 강론은 그것 자체가 가진 맛도 있겠지만,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내 배가 얼마나 고픈지도 그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하기도 할 테다.

배가 부를 때는 고급진 음식도 별로 맛이 없게 느껴지지만

영적으로 허기졌을 때는 무엇이나 맛있게 먹을 테고,

소식만 해도 배가 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먹어도 먹어도 식탐을 부리는 사람처럼, 영적으로도 식탐을 하는 게 아닌지 성찰을 할 때도 있다.

또 평소에는 입맛에 안 맞는 밥상, 정성이 안 들어간 밥상을 받더라도

그저 차려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받지만,

가끔은 내 입맛에 딱 맞는, 그래서 감동스러운 눈물이 차오르는 그런 강론을 듣고 싶을 때도 있다.

어쨌든, 막 서품받은 새 신부님들이나 부제님들의 강론은 대체적으로

이제 막 신혼살림을 시작한 주부 같은 솜씨의 밥상일 때가 많다.

뭔가 다소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하여 떨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 같은 밥상이랄까.

 

오늘도 역시 그랬다.

이냐시오 한 달 피정 때 등산을 하면서 멧돼지를 만난 사건으로 서두를 연 부제님의 강론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하느님의 백성이 걸었던 여정은 그저 '묻고, 듣고, 걸어가는 것'의 반복이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었고,

강론 후반부에는 오늘 복음이었던 거룩한 변모 사건과 사순절에 관한 내용들이 이어졌지만

내 마음에는 '묻고, 듣고, 걸어가고'라는 말씀이 담겼다.

묻기만 해놓고 듣지 않고 걸어가기도 하고,

아예 묻지도 않고 그냥 내 마음대로 가버리기도 하고,

묻거나 듣기만 하느라 걸어가야 하는 발걸음은 마냥 늦추기만 하는 내 인생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묻고, 듣고, 걸어가기를 한 번 함으로써 마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또 한 가지 마음에 남은 것은 '사순절'이라는 영어 단어는 'the Lent'인데, 그 뜻은 '봄'이란다.

보통 'spring'이라고 쓰는 봄은 새싹이 솟아오르는 것을 표상하는 봄을 의미한다면,

lent는 어원상 얼음이 녹고 풀리는 뜻을 담은 봄이라는 것.

그것만 봐도, 요즘 얼음이 녹고 땅이 녹아드는 우수 절기와 잘 맞아떨어지며,

절기력과 전례력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예전에, 수녀원에서도 종신서원을 앞둔 종예반 수녀님들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종신서원, 죽을 때까지 되돌이킬 수 없는 그 엄청난 약속을 준비하면서 어찌 갈등이 없고 유혹이 없으랴.

그렇지만 계약직처럼 일 년, 일 년 그렇게 해마다 서원을 갱신하는 유기서원자로 몇 년 살면서 수도생활의 맛을 보고,

이제는 계약직이 아니라 종신직으로 차라리 온 삶을 던져버리겠다고 준비하는 그 시기의 수녀님들에게는

아주 앳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노련하지도 않은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었다.

그와 똑같을지는 모르지만, 사제품을 준비하는 1년의 부제생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부제님의 강론 덕분에

영성체를 하면서 이 땅의 모든 부제님들과 종예반 수녀님들을 위한 지향이 자연스레 덧붙여졌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니 현관 앞에 부제님, 보좌 신부님, 주임 신부님, 수녀님이 한 줄로 쭉 서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신다.

부제님에게 강론하시느라 애쓰셨다고 인사라도 한마디 할까, 하는 마음이 순간 스쳐가기는 했으나

이 시기에는 그런 지나가는 칭찬의 한마디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다.

 

'부제님, 강론 준비하시느라 애셨습니다! 남은 기간 사제품 잘 준비하시고, 부디 겸손한 사제가 되어 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