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공간 속에서 기다리신 분을 만나다

종이-배 2013. 12. 6. 08:39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회의가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나 기차 시간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뭘 할까 생각하다가 서울역에서 멀지 않은 혜화동 성당에 갔다.

혜화동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으니

갑자기 그 공간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얼마나 벅차던지.

오십 년 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를 이 세상에 보내기로 택하신 부모님이 그곳에서 결혼을 하셨고,

내가 이십대 때 제 언니도 그곳에서 결혼을 했다.

신학교를 다닐 때 한 달 정도 피정 들어가신 언니수녀님 대신에

그곳에서 제의방을 도와드리면서 지내기도 했고,

그리고 십사년 전에는 나 역시 그곳에서 혼배성사를 받았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맞아주시는 아버지처럼,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 기다리신 것처럼,

그렇게 그 공간에서 줄곧 나를 기다리고 계시던 예수님을 만난 느낌...

아마도 요즘 나를 붙드는 말들 중에,

공간이 뭐냐, 시간이 뭐냐 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 피정을 하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등등

그런 욕구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고,

그러면서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남들은 모두 거시적으로 사는데,

나 혼자 무지 미시적으로 사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남들은 가치로운 일을 하면서 사는데,

나는 그저 내 밥벌이, 내 새끼들만 간신히 건사하면서 사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영성생활에서도 끊임없이 외적인 자극을 원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피정도, 성지순례도, 가슴을 울리는 강론도,

어쩌면 아이들이 조금 더 자극적이고 멋진 장난감을 원하듯이

나도 그런 자극을 계속 찾아다니는 거구나 하는 마음...

그런 자극이 없이도,

그냥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고,

숨쉬고 밥먹고 일하고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고 그런 중에서도 순간순간

하느님을 느끼고 발견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거였는데

그 모든 일상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놓쳐버리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

하느님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해 계시고,

이미 나와 함께 계시고,,, 그런 것들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머리와 말로만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

거시적으로 만나는 하느님이나,

미시적으로 만나는 하느님이나

결국은 같은 하느님, 같은 사랑이신데

나는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하느님, 자극적인 하느님만을 찾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

어쨌든 그런 것들이,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이미 하느님 안에 있고, 사랑 안에 있는 거다, 라는 느낌으로 전환되고 나면서부터는

그런 욕구들이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코드가 안 맞아서 도무지 내 능력으로는 사랑해주기 힘든 아이들도,

굳이 내가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그냥 그 아이와 내가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데는

올 한 해동안 한 방향을 두고 공부하고 읽어 온 통전적 시각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글보다 말이 먼저고,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시고, 그 말씀은 늘 우리 곁에, 우리 안에 계신다는 통찰은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의 육화와 연결되어 요즘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