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의 스승들>
일곱 살 아들 녀석에게는 동관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아들 녀석은 만 20개월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갔는데, 동관이는 우리 아이보다 먼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어렸기 때문에 교사들과 부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어린이집에는 또래의 친구들이 여럿 들어왔습니다. 두 아이는 새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려 놀았지만 그래도 둘은 여전히 단짝이었습니다. 한 녀석이 하루라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보고 싶어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늘 크고작은 분쟁이 일어나곤 하는데, 희한하게도 두 아이는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둘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두 아이는 싸움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눈치껏 피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문제가 되면 하나가 슬그머니 양보를 한다거나, 말다툼을 하다가도 하나가 먼저 “알았어.”라고 입을 닫아 버리니, 둘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질 만한 큰 분쟁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때리고 할퀴고 넘어뜨려 울고불고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느 날엔가는 한 녀석은 뺨에, 한 녀석은 코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물어뜯으며 싸워 놓고도, 서로 자기는 안 그랬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들은 억지로라도 “미안해”와 “괜찮아”를 하게 했는데, 조금 후에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대며 놀았습니다. 그렇게 사오 년 동안 다투고 사과하고 용서하기를 반복한 끝에, 둘은 이제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아이들은 언제나 스승입니다. 40년 넘게 그분의 친구로 지내면서도 진심을 담아 “미안해”라고 말하기 어려워하고, 번번이 “괜찮아”라고 말씀해 주시는데도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굴고 있는 제게 아이들의 다툼과 화해는 빛이 됩니다. 아이들 덕분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고해소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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