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살기/밑줄 긋기

[숲 속의 자본주의자] 중에서

종이-배 2022. 1. 31. 06:25

[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박혜윤 / 다산호당 / 2021

 

- 내가 의지력 없는 나를 미워하면서 시간을 쓰지 않고 내 인생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꾸밀 수 있었던 것은 어쭙잖은 미련을 갖는 대신 완전히 포기했고, 그 포기가 불러온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포기한 자리에는 무언가가 반드시 채워진다. 자연은 빈 공간을 싫어한다. 버려진 집이나 농지는 삽시간에 잡초로 채워지고, 뚜렷한 목표가 사라진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른다. 잡초나 잡생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따져보면 잡초나 잡생각은 더 상위에 있는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이다. 농작물을 포기해버리면 이전에 잡초라고 뭉뚱그렸던 것 속에서 나물이며 야생 과일, 나무가 보인다. 잡생각도 마찬가지다. 일간지 1면 상단에 대문짝만하게 오를 만한 기삿감, 유명한 저널에 소개될 만한 논문 주제 등 우선순위였던 것들을 포기하면 그전에는 빨리 없애야 했던 잡생각들이 달리 보인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선택이 시작된다. 포기하면 내게 중요하고 가치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지지만 결코 그 빈자리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새로운 가치가 되어서 나타난다. 무언가를 포기한다고, 삶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70~71

 

- 포기의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충분히 좋았던 것들을 놓아야만 하는 때가 온다. 정확히 그때가 언제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한다. 다만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라고 자문을 해보아도 도무지 떠오르는 답이 없다면 그때가 의심하기에 좋은 때다. 그 의심이 나를 찾아온 순간 회피하지 않는 것, 나에게 태연하고 냉정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질문은 단순할수록 좋다. 73

 

- 이런 마음으로 포기했다. '있는 것을 챙기자.'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에 떨어진 쭉정이 벼 이삭을 줍는 심정으로 별 볼일 없지만 내 마음에 작은 기쁨을 주는 일,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했다. 잡초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내고, 좋아하는 [월든]을 닳도록 읽고, 나만의 된장 레시피를 개발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75

 

-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77 (조지 엘리엇, [미들 마치] 재인용)

 

- 진짜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포기할 수 있다. 그냥 고기가 없으면 없는 대로, 고수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해 먹을 때도 많다. 그러니까 욕망에 항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이 어떤 건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79

 

- 소로의 삶이 보여주듯 나만의 바구니를 계속해서 짠다고 세상이 알아봐준다는 보장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소로의 인생이 불행했냐고 하면 아닐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살아나갔다. 세상이 무심하든 아니든, 주어진 자유를 누렸다. 94

 

- "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 건 맞아. 그런데 생각해보면 엄마가 뭘 시킨 적이 없어. 그게 이상한 거지." 바로 이 지점이 변화를 위한 첫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시키겠다는 목표와 의지를 버리는 것. 변화가 필요없게 되어야 그때 변화가 제 발로 찾아온다. 변화는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고사하고, 내게서 바꾸고 싶은 것들을 나의 의지대로 변화시킨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일시적이지 않은 진짜 변화들은 오히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됐을 때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 96

 

- 서로가 사고 싶은 바구니를 가진 엄마와 딸로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엄마가 내게 상처 주었다는 생각도,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엄마는 자기 방식대로 엄마이고 나는 나의 방식대로 딸일 뿐이다.

엄마로서 느끼는 죄책감이나 불안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부족한 엄마로 보거나 언젠가 내 아이들이 나를 원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을 걱정하며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싶지 않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좋은 엄마'가 아이들에게도 좋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엄마이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거나 어떻게 커야 한다는 기준이 없고, 더욱이 엄마인 나에 대해 아이들이 감사하거나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엄마가 되고, 너는 네가 되고 싶은 딸이 되면 그만이다. 100

 

- 신이 있다면 인간을 놀리는 걸까? 인간이 간절히 원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막상 그런 변화가 필요없어지면, 변화가 찾아오는 게 얄궂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뒀다. 대신 나의 주인이 됐다. 지금을 나의 행동, 나의 책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행이나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고, 그 상황을 내 일부로 인정했다. 내 힘으로 잘못과 불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102

 

-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없는 맥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이 생기면, 변화가 드디어 저절로 찾아온다. 103

 

- 내가 30여 년 더 먼저 살았던 것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키울 수가 있을까? 그 해답 역시 소로의 같은 구절에서 찾았다. 젊음에게 배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무슨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젊음 자체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 앞에 나 자신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뜻이다. 107

 

- "누구 돈이건 옳지 않은 것 같아. 이건 우리의 삶이잖아. 외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직접 해야 하는 일이야. 우리 옷이고, 우리 책임이야. 남한테 이걸 빼앗기는 거야.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만의 삶은 우리가 살아야 하잖아. 우리에게 돈이 무한정 있다고 해도, 아이 키우는 것도 남한테 맡기고,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맡기고, 생각하는 것도 맡기고, 그러면 우리가 왜 사는 건데?" 113

 

-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47

 

-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하고, 남들을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우리에게 진짜 완전한 자립을 이룰 능력이 있거나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혼자일 때 인간은 타인의 문제는커녕 자신의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다. 불완전하고 그래서 남에게 자연히 기대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이렇게까지 애써도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남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남에게 기대는 용기를 얻게 된다. 156~157

 

-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늘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166

 

-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따. 그런데 나중에는 사르트르가 직접 이 유명한 문장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흔히 인용하듯이 나를 괴롭히는 타인과의 나쁜 관계 때문에 지옥같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모든 것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온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타인은 지옥이다'가 아니라, '지옥은 타인에 있다'가 더 맞을 것이다. ... 내가 나 스스스로를 평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지옥'이라고 사르트르는 설명한다. 생존을 위해 공기와 물이 필요하듯이, 끊임없이 타인에게 기대어야 한다는 그 사실. 우리는 이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타인이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172~173

 

-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즉 이 세상을 포기하고 나면, 바로 그때부터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를 깨닫게 되면 드디어 우리가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가 보이는 것이다." 176 (소로 재인용)

 

- "나는 다른 작가들도 남들에게서 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삶에 대한 소박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쓰라고 하겠다. 그런 이야기들은 그가 먼 나라에 가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가 진실된 삶을 살았다면 말이다." 181 (소로 재인용)

 

- '매일 일관된 기분과 에너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의 뻣뻣한 코트를 억지로 솔기를 잡아 당겨가며 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을 뗐다. 183

 

- 나무는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면 움직이지 못한다. 나무들이 가진 자유는 위로 자라는 자유뿐이다. 모든 나무들은 그 자유를 선택해 철저하게 쟁취한다. 185

 

-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내 마음뿐이다. 189

 

- 교수는 말했다. "자기 생각을 담는 글이 겨우 A4 10장 정도라면 인용은 하나나 두 개만 담아도 넘칩니다. 글의 주인공은 본인의 생각이고, 아무리 유명한 천재의 인용도 조연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의 글에서 자기의 생각이 가장 빛나야 합니다. 그게 세상을 위하는 길입니다. 천재의 글을 사소하게 만들 만큼 당당하게 학생의 생각을 쓰세요. 무지가 창피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게으름이 창피한 겁니다." 204

 

- 그렇다. 듣는다는 것은 어떤 깊은 지혜나 말재주, 따뜻한 마음 혹은 그저 침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듣는다는 것은 시간과 관련이 있다. 책에서 모모는 집도 가족도 없는 아이지만, "넘치게 풍성하게 가진 것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삶"이다.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진짜로 듣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시간,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삶에 이어져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해서 마치 영원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처럼 나의 조급한 시간표를 온전히 잊을 때 비로소 타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219~220

 

- 사랑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세계적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책 [몰입]에서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최적의 상태를 묘사한다. 그것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해서 시간의 흐름을 잊는 상태다. '시간의 흐름을 잊는' 것이 핵심이다. ... 행복은 이 순간을 돌아볼 때 깨닫는 것이다. 모모의 듣는 행위와 일치한다. 나의 한정된 시간, 나의 생각, 의미를 완전히 잊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것이다. 221

 

-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가난한 사람, 탐욕스러운 사람, 불행한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수시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닥쳐오는 운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아주 가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소설에서는 이를 사랑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지 선의를 베푸는 것보다 더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놓는 것. 225~226

 

- 어떤 사람의 인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후회할 만한 인생인지 아닌지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존재니까. 타인은 그래서 소중하다. 나에게 무언가 해줘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해주니까. 나 자신을 잊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그때가 어쩌면 우리가 신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229

 

- 방법은 단순하다. 끝을 생각한다. ... 내게 미니멀리즘이나 소비 줄이기가 쉬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새 물건을 사고 싶거나 필요할 때, 내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돈이나 쓸모가 아니다. 물건의 끝을 생각한다. 버리고 싶어질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상상한다. .... 코로나 세상에 대해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 마음도 내가 예상치 못했던 모습으로 바뀐다. 지금 꼭 사고 싶은 부동산 때문에 잠도 안 오는 와중에, 이 부동산을 갖기 싫어질 때 없애는 방법부터 골똘히 생각한다. 결국 누군가에게 팔아야 한다. ... 부동산의 예를 든 것은 아마도 끝없는 욕망을 멈추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구는 너무도 강렬하니까. 나 역시 매이기는 싫었지만 돈이 주는 품위와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딘가에서 끝나기를 바랏다. 혹은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욕구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서도 계속됐을 때가 힘들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시험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힘들었다. ... 인간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괴롭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삶의 충만함을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이해한다. 266~271 (에필로그/ <끝을 바라보며 지금을 사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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