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 책들 / 전미연
1권
- 이야기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14
- 이렇듯 고양이는 몸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면서 몸과 일체를 이루는 삶을 사는 반면, 인간은 신체 리듬과 일치하지 않는 피곤한 삶을 살다 보니 수시로 병을 얻는다. 감각 면에서도 고양이와 인간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78
- 한마디로 말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향수(鄕愁)>라는 단어가 주는 아릿한 느낌. 이 단어는 지금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그리움의 표현이다. <조화>, 이것은 모든 게 제자리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균형의 느낌, 그 안정감을 지칭한다. <구식>이라는 단어는 발전의 속도에서 뒤처진 무언가를 지칭하는데, 왠지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든다. <신경증>이라는 난해한 단어. 하지만 이것은 사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감정을 가리킨다. 상처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니까. 102
- "지나간 시간은 흔적을 남겼어.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됐지. 이제 가을의 끝자락이야. 곧 겨울이 시작되고 추위가 찾아올 거야." .... 피타고라스가 머리를 세게 턴다. 마치 <두려움이 위험을 피하게 해주진 않아>라는 말을 외치는 것처럼. 105
- 안젤로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한다. "있잖아요, 나중에 내가 커서 우두머리가 되면 절대 비겁하게 행동하진 않을 거예요." "알았으니까 그만 가서 자도록 해." 얼마의 시간이 걸려야 젊음은 지혜를 획득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폭력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효용이 있는 경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 행동하는 건 곧 자살 행위다. 근시안인 젊은 고양이들은 당장의 쾌락과 눈앞의 목표밖에 생각하지 못해. 쥐들을 죽일 생각만 하는 안젤로처럼 말이야. 멀리 보지 못하는 거지. 이 세대는 폭력에 뒤따르는 장기적인 대가를 계산하지 못한다. 나는 결국 평화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용적인 평화주의자다. 113
- "난 투표가 꼭 최선의 선택을 위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투표를 거치면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할 뿐이죠. 난 투표보다는 계몽된 독재를 선호해요. 물론 계몽은 내가 해요. 여러분은 내 말을 경청하고, 그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요. 실패해도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요. 반대로 성공한다면, 내가 옳았고 반대자들은 틀렸다는 걸 한 번 더 입증해 보이는 셈이죠." 135
-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면 하는 쪽을 택하렴. 했을 때 생기는 최악의 결과라 해봐야 그걸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거니까." 142
- "우리한테 유리하게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게 언제가 될지,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기의 흐름을 읽으면서 그 흐름 속에 있는 것뿐이야." 148
- "인간이 느끼는 위대한 사랑-위대하다는 표현을 강조하고 있어-은 상대방과 자기 자신이 동일체가 된 것처럼 느끼는 감정의 상태를 의미한대. 그것은 연민을 포함하는 감정이래.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된대." 152
- "두 번째인 유머 말이야, 나도 어디서 들어 보긴 했는데, 한 번 더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봐 줄래?" "설명하기가 참 어렵대. 뭐랄까, 일시적으로 정신의 균형이 깨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대. 탁 놓아버리는 상태. 이때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서 긴장이 풀리고 순간적으로 호흡이 가빠지는데, 인간한테서만 관찰되는 이런 현상을 <웃음>이라고 부른대." 152
- "아직 네 영혼을 울릴 만한 예술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니까 실망하지 말래. 그리고 음악과 미식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라고 꼭 말해 달래. 회화나 조각, 무용도 있고 향수, 패션, 원예 등도 하나의 예술적 표현 형태가 될 수 있대. 네가 이런 예술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대. 또 네가 진정으로 인간 문명을 계승할 고양이 문명을 확립하고 싶다면 예술의 위력을 깨달아 그것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한대. 어떤 종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그 종이 가진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면서 미(美)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이 점을 강조해 달래." 153
- 인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신기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그저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들릴 뿐인데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음악의 문장들이 들리고, 나중에는 반복되는 주제들을 통한 소리의 진화, 그리고 그걸 통해 음악가가 말하려는 이야기가 귀에 들린다. 154
- "몰입해서 들어 봐. 예술이 공포를 쫓아낼 줄 거야." 169
- "백과사전은 모든 존재가 가진 직관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해 놓은 것일 뿐이야.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잊고 있는 것들을 말이야. 표현되는 순간 그것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거지. 죽음과 삶 살이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죽음 앞에 설수록 삶의 부름을 크게 느끼게 되니 말이야. 우리가 목도한 잔인한 처형 장면은 도리어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어. 아까 그 끔찍한 연출의 목적은, 티무르의 전략은 아마도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이었을 거야.... 공포로 이성을 마비시키겠다는 거지. 그러고 나서 우리의 감정까지 마비시키겠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가 우리 내면의 화학 작용을 잘 제어할 수 있으면 놈에게 무작정 휘둘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170
22 삐딱한 두꺼비
두꺼비들은 매년 산란지에 가서 알을 낳고 다시 서식지로 돌아오기 위해 대이동에 나선다.
그런데 그 사이에 고속도로가 생겨 늘 다니던 길로는 서식지에 되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군집 본능을 가진 두꺼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함께 고속도로를 건너다 차에 깔려 죽기도 한다.
물론 두꺼비들이 고속도로 때문에 왔던 길을 통해 다시 서식지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지나다닌 길을 이용해 돌아가려 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시화 이후 두꺼비는 멸종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집단 지성 덕분이다.
다수의 두꺼비가 익숙한 길로 가려 할 때 다른 길을, 다수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는 소수의 두꺼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두꺼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삐딱한 기질을 가진 이 두꺼비들이 조상들의 길을 따르지 않고 무모해 보이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직 두꺼비라는 종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2권 - 172~173
- 누누르는 전쟁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투쟁을 두려워하는 건 천둥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둥이 쳐야 비가 쏟아지고, 비가 와야 식물이 자라고, 식물이 자라야 초식 동물이 살고, 초식 동물이 살아야 육식 동물이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199
- 내가 아무리 바른 판단을 내려도 주변의 편협한 존재들이 이해를 못 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201
- <네 행복이 다른 사람의 결정에 좌우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이야>라고 엄마가 말하지 않았던가. 204
- <바스테트야, 절대 생각 없이 행동에 나서선 안 된다. 직감과 반대로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더러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단다.> 그래, 진즉에 엄마의 이 말을 떠올려야 했어. 232
- "삶과 죽음의 결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네가 내린 결정은 불평하지 말고 감내해야 해." 240
- 나와 같은 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 그 상대의 목숨을 구해 주고 뿌듯하게 느낀다면 이게 바로 연민의 감정이지 뭐겠어. 방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극적인 연민의 감정을 경험한 거야. 내 안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라도 우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253
- 이 연민이라는 감정은 얼마나 유용한가. 그것을 갖는 순간 개미와 민달팽이, 나비, 파리, 모기, 심지어 뱀까지 새롭게 보인다. 이 낯선 생물들이 예전처럼 내가 잡아먹거나 피해 가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254
- "저번에 네가 나한테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중에서 <협동-상호성-용서>라는 항목을 읽어준 적이 있어.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이로운 방식은 무조건적인 협동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네가 가르쳐 줬잖아. 상대가 실망스럽게 나오면 똑같이 그렇게 대하되, 용서하고 나서 다시 협동을 제안하라고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나를 용서해 주면 안 될까. 그러고 나서 우리 다시 협동하면 안 될까." 259
- <네가 무엇을 하든 자연은 다 알고 있단다. 네가 하는 행동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도 벌을 받을 수도 있어.> 이러면서 엄마는 내게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쳐주었다. 좋은 말은 맞지만, 솔직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니 대가를 바라선 안 된다. 다른 보상을 기대하고 행동하면 실망하거나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264
- 모든 존재는 서로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2권
- "너도 방금 느꼈지?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해 보였던 게 그 함의를 깨닫는 순간 새로운 차원을 획득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야." 18
- 나는 그동안 아들 안젤로에게 <진실은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내 철학적 좌표나 다름없는 이 말을 수없이 해줬다.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고정불변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그래야 정신에 숨통이 트인다고. 74~75
- ... 개인적으로 저는 저들을 용서합니다. 용서는 진화한 종만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83
- 삶은 골칫거리들이 줄줄이 엮인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행은 강장제 같아서, 존재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를 진화하게 만든다. 고통은 감각을 벼리고 감춰져 있던 우리의 능력을 드러내 준다. 평온하기만 한 삶을 살다 보면 정체되고 말 것이다. 적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가진 용기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쉽고 편하기만 한 관계는 신비감과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106
-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거든 귀를 기울여 더 잘 들어보렴. 그 순간 그게 음악이라는 걸 깨닫게 될 테니.>" 109
- "모든 존재는 배움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다고 난 믿고 있어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삶이야말로 최악이 아닐까요." 114
- 예전에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 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네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란다>라고 말해 주셨어. 131
- 태어나는 순간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삶의 우여곡절은 첫 숨을 토해 내기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이라고. 이 명백한 삶의 여정을 망각할 때 우리에게는 불현듯 어떤 순간이 찾아온다. 때때로 그것은 꿈으로, 어떤 징표로, 혹은 직관으로 나타나 우리의 길을 일러 준다. 161
- "두려움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해. 난 천성적으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야." 187
- <불행의 원인은 두 가지란다. 권태감과 질투심. 권태감은 위험이 따르는 행동에 나서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어. 하지만 질투심은 포기하는 것밖에는 다른 약이 없단다.> 엄마의 이 말씀이 백번 맞아. 위험은 내가 감수할 테니까 너 자신을 위해 포기하라고 피타고라스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어. 188
- ... 대신 외교적 협상에 필요한 충고를 몇 가지 해줄 테니 잘 들어. 첫째, 놈이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누구든 자기 자신의 신화를 이야기하고 나면 그걸 들어 준 상대를 파괴할 마음이 생기진 않아.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상대에게 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야.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덜 낯설어지는 거지. 둘째, 상대를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돼. 티무르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왕이 됐어. 힘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능도 갖췄을 게 틀림없어. 셋째, 어떤 순간에도 통제력을 잃어서는 안 돼.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거나 당황하면 안 돼. 설령 그러더라도 철저히 장막을 치고 감정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드러내선 안 돼. 반대로 그의 감정을 촉발할 방법은 끊임없이 찾아야 해. 그게 놀라움이든 만족감이든 실망감이든 분노든 상대의 감정을 이끌어 내야 해. 감정이 개입하면 누구나 효율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니까." 189~190
- <이와 물방울일 바에는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이 되렴.> 194
- <남들이 너한테 하는 비난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단다.> 엄마 말대로 변태들이 도덕을 운운하고, 겁쟁이들이 비겁함을 지적하며, 거짓말쟁이들이 진정성을 추앙하지.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206~207
- <네가 남에게 시켜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거라.> 우리 엄마의 주옥 같은 말이다. 내가 직접 나서야 할 때와 남에게 시켜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게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 아닐까. 230
- "글을 쓴다는 건 세상 어떤 것보다도 큰 권력이란다. 그 어떤 강렬한 쾌감도 승리의 환호도 글쓰기에 비견할 바가 못 돼. 글로 흔적을 남긴다는 건 자기 생각이 경계를 뛰어넘어 불멸성을 획득하게 만든다는 의미니까." 236
-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꼭 필요하단다. 그걸 명심해. 글을 쓰는 순간 네 생각이 정리되고 흐름이 생기면서 단단해지는 걸 느낄 거야. 글쓰기는 네 정신에서 약한 것은 내보내고 옹골찬 것만 남겨 주어 네가 가진 진정한 힘이 뭔지 깨닫게 해줄 거야. 네게 닥치는 불행을 숙성시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 거야. 글쓰기는 그 어떤 깊은 대화나 성찰보다도 너를 더 멀리 도약하게 해주지. 글을 쓰는 동안 잊고 있었거나 일부러 감추고 있었던 네 내면의 지층들을 탐색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그동안의 자기 성찰이 너 자신에 대한 표면적 이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 거야. 글로 쓰지 않는 한 네 생각은 모소하고 불완전한 채로 사라져 버리고 말 거야. 명심해. 너는 그 가치도 모른 채 그저 사소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거니 생각할 거야. 하지만 네 감정이 문장이라는 형태를 갖추는 순간 그때 비로소 너라는 존재는 예민한 수신자이자 강력한 발신자가 되는 거야." 237
- "걱정하지 마, 안젤로, 결국 우리가 이길 거야. 그 이유를 말해 줄까? 바로 우리가 미래에 대한 가장 완벽한 계획을 가졌기 때문이야. 때로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도 결국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자, 그 혜안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아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거야. 그게 세상의 이치란다. 과거의 관습에 매몰되는 자는 절대 상상력을 가진 자를 이기지 못해." ... ".... 쥐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우리는 결국 생명의 진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어. 쥐들은 야만성과 수적 우세를 중시하는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할 뿐이야." .... "... 그러니 당장은 불리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정신으로는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단다." "물질로는 아니고요...?" 조막만한 게 지금 대드는 거야? "물질은 늘 정신보다 한 발짝씩 늦지." 257~258
- "엄마는 식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어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영혼이 있단다.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어떤 생명 에너지가 있다고 나는 믿어. 각각의 존재가 가진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바로 그 에너지지. 그것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연결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돼." ... "그러니까 엄마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몸속에 있는 세포들처럼 연결되기를 바란다고요?" "내가 바라는 건 최소한 그 세포들이 경쟁과 증오와 적대감에 사로잡힌 정신들로 분열되어 상대방의 에너지를 도둑질하려고 싸우지는 않았으면 하는 거야." 260~261
- 내 아들인데도 왜 이렇게 짜증스럽기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성애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신화일 뿐이야. 현실은 그것과는 다르지. 자식도 남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 자식이라도 남과 똑같이 얼마든지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어. 261~262
- "우리한테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 불행 역시 우리의 진화를 위한 촉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 가끔은 불행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앵무새가 날개를 으쓱해 보인다. "나는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는데." 그건 네가 세상 보는 시각이 좁아서야. 행복은 감각을 잠재우고 불행은 감각을 일깨운다는 걸 네가 알 리 없지. 너나 피타고라스 같은 평화주의자들은 안정과 평온만을 희구하지. 하지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긴장과 충돌이야. 그것이 우리의 지능과 용기를 자극해 주거든. 게으른 자들만이 평화에 집착하는 거야. 299
- 늘 지나친 상상력이 문제야. 없는 위험을 이렇게 만들어 내며 불안에 떨고 있으니 말이야. 아마 이건 경각심을 잃지 않으려는 나의 조건반사적 반응인지도 몰라. 편안함에 젖기보다 변화와 모험을 꿈꾸는 내 성향 때문일 거야. 322
- 뜨겁게 달아오른 뇌 속에서 생각이 널을 뛴다. 나를 제약하는 건 내가 스스로에 대해 가진 생각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이 내 전부가 아니야. 나는 스스로 바스테트라고 믿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될 수 있어. 나는 바스테트인 <동시에> 피타고라스가 될 수 있어. 나는 다른 고양이갸, 다른 동물이 될 수도 있어.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어. 식물에도, 내가 사는 이 행성에도, 심지어 별과 우주에도. 나는 나라고 믿었던 그 존재 이상이야. 그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야..... 나는 언제든 남이 될 수 있어.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거야. 331~332
-<오랫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찮아 보이던 것도 흥미진진하게 변한단다.> 337
-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갇히게 된다. 338
- [고양이]에서 세상에 조금씩 눈떠 가던 주인공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문명]에서 <고양이 폐하>가 되기를 꿈꾸며 연대와 공존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고양이 문명을 세우기로 한다. 이를 위해 인간만이 가졌다는 세 가지 개념인 유머와 사랑과 예술을 체득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동물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문명]은 [고양이]에 비해 우화적 색채가 짙어졌고 작가의 메시지도 더 직설적이다. 라퐁텐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히는 이번 소설에서 돼지들에 의한 인간 재판이나 실험동물의 현실을 고발하는 몇몇 대목은 베르베르 방식의 동물 해방 선언이라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실은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인 이 한 편의 우화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가가 울리는 경종이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 돼지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350(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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