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살기/밑줄 긋기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종이-배 2015. 12. 6. 09:10

2015년 12월 6일 일요일

 

어제 이상석 선생님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다 읽었다.

<못난 것도 힘이 된다>를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올해 회보 원고를 쓸 때 이송*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 받던 중

이상석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아서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와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를 함께 사두었다.

그러고는 조금 들춰보다가는 한동안 책을 손에 들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주 주제활동 끝나고 나서는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먼저 후루룩 다 읽었다.

사실 '후루룩'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아픔,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의 아픔뿐 아니라

최루탄 가스까지 함께 맡는 느낌이었고

교회 재단의 학교들의 문제점이 낱낱이 다가와 마음이 아팠다.

(사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수녀원이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부잣집 아이들이 선호하는 유명한 사립초등학교가 되어 있고,

수녀원이 운영하는 고등학교 역시 대학진학을 우선시하는 경쟁 체제로 들어가 있다는 것에

그동안 얼마나 실망하고 답답해했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그 수녀원의 식구였을 때는 몰랐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보니,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수녀원의 모습이 아니고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수녀원의 수익사업으로 보일 뿐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웃으며 읽고, 눈물을 흘리며 읽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이들을 어떻게 믿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 책,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를 손에 들었다.

아마 이 책도 오늘 중에 다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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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매 생각>

할매야

할매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먼저 나노

초라한 상여 뒤 따라

보리가 이글이글 누렇게 타오르던 산비탈 지나

소나무 우거진 산모롱이

생전에 못 잊던 손수 지은 낮은 기와집 내려다보이던 곳

마른 땅 파내어 할매를 묻을 때

할매야

그 이별 서러워서 할매 니도 울었제

할매를 묻고 돌아 내려올 때

참 이상케도 보리밭 두렁에 앉아

보리대궁이 꺾어

나는 또 보리피리 불어보았데이

온 세상 파란 하늘

할매의 나라 하늘을 보며

눈물도 없이 삘리리

보리피리는 혼자 울었데이

 

방학이면 감 삭혀두고 난수밭에 강냉이 심어

날 기다리던 할매야

아이구 내 새끼 옥골선풍 내 새끼

엉뎅이 토닥거려 잠재우던 울 할매

자식 많던 그 시절 애오라지 딸 하나 두고

가뭄 든 여름날 물꼬를 지키느라

늑대 우는 들판에 억척같이 밤새우던 할매야

동네 혼사 때면 새벽에 곧추앉아

사돈지(紙) 써주던 울 할매야

 

참으로 나는 할매의 사랑으로

이만큼이라도 더운 가슴

지닐 수 있었제

저승꽃 핀 손으로 선생질 잘 하라고

얼굴 싸안아주던 울 할매야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할매의 삶을 얘기해 준다

'하늘의 절반' 우리 아이들

지금 이렇게 까르르까르르 예쁘게 웃고만 있는 아이들도

이 땅을 일구고 지키며

할매의 삶을 이어갈 크나큰 힘인 것을

이 아이들 스스로 한 세상 꾸려가는 날까지

내가 받은 할매의 따슨 가슴 물려줄란다

언제까지나 이어올 아이들의 가슴에

울 할매 같은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그것은 할매의 환생이요

사랑의 잔치일 거라

 

이 땅이 할매의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면

언제쯤 우리 모두

이 강산 누비는 비구름 되고

흙이 되고 풀이 되어도

우리는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이제, 할매.(40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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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니가 애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이가. 사랑은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그 마음 아니겠나. 그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사랑은 자기 발전 없이는 안 되는 거라고." 그렇지요. 사랑의 정의를 내리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지요. '사랑은 자기 발전을 바탕으로 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

그렇다면 좋은 것을 외부에서만 찾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려 봅시다. 내 좋은 모습을 사랑하는 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헤어져서 다시 만날 때를 생각해 봅시다. ... 끊임없이 발전하는 모습,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좀 더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있다면, 교사로서 원숙한 경지에 들어서서 부끄럼 없는 교사가 되어 있다면, 나는 여러분 앞에 나서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일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헤어져서 다시 만났을 때 지난날 함께 있었을 때 추억 말고는 이야기할 게 없다면 그건 불행입니다. 추억도 좋지만 그것은 두세 시간 얘깃거리밖에 안 됩니다. 그 뒤의 발전한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열쇠가 되지요. 부부나 친구 사이의 사랑도 이와 꼭 같습니다. 평생을 살아가며 아무 발전도 없이 처음 만났던 그대로라면 샘솟는 사랑은 없습니다. 생각이 깊어지고, 생활이 더욱 부지런해지고, 어린이가 쑥쑥 자라듯이 마음이 쑥쑥 자랄 때라야 사랑은 깊어집니다.

"사랑은 자기 발전을 바탕으로 한다."

...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지만 마음으로만, 마음으로만 해서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때 더욱 알차진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노작, 몸소 수고하여 만들어 이루는 것이다."

... 우리가 하는 사랑이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다면 사회적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사랑도 사회 정의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 (414~ '사랑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