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살기/밑줄 긋기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종이-배 2015. 9. 25. 21:18

2015년 9월 25일 금요일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부제는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라고 달려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선생님의 교육 일기다.

이오덕 선생님 일기를 읽으면서는 꼬장꼬장한 교장 선생님의 모델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탁동철 선생님 책인 <달려라 탁샘>이나, 이상석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시는,

그러나 정말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에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이해가 덧붙여져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면서 읽었다.

구구절절 공감이 되고, 정곡을 찌르는 표현들,

내적인 고민을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기술해 내신 것에 매료되어

야금야금 아껴먹듯이,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었다.

밑줄 그어 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그만둘까 하는 유혹도 생기고,

'이러다 책을 그대로 베끼겠군.'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좋은 글은 이렇게 한 번 따라서 써보면 마음에 뭔가 더 남겠지,

글쓰기 실력도 향상되겠지 싶어서 줄 그은 부분은 다 썼다.

(손으로 쓰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한글로 써 보니 8쪽이 나온다.

독서록에는 붙이지 못하고 여기에만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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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뜻을 붙들고 달려온 삶이었고,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었기 때문이다. ... 내게서마저 방치된 영혼, 많이 울었다. 그리고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심하지 않으며, 내 영혼을 품기로 했다. 연약하거나 부족하거나 넘어지거나 상처 주거나 인격의 그릇, 사람됨의 그릇이 형편없이 작을지라도 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삶에 주어진 숙제, 그것 하나 푸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오며 결코 뒷걸음질치지 않았고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면, 그 삶을 잘 살았다 말해주고 싶다.(17)

 

인생의 본질은 오히려 가능성을 묻지 않고 가는 길에 있다. 그러므로 또다시 힘겨운 과제 앞에서 될만한 일인지를 묻지 마라. 이는 자기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배반하는 것이요 인생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22)

 

변화가 필요하면 돌들을 통해서라도 외침이 일어나고, ... 지금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권력이 되어서도 바꾸지 않을 것이기에. 힘을 기르는 그 과정이 오래 걸릴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변심하는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25)

 

진실과 성심을 유보하는 생의 빈 칸이 생기는 순간, 그가 누구든 그는 나쁜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나쁜 권력이란 약자를 탄압하는 불의한 권력이 아니라, 약자의 고통을 알면서도 자기 안위를 걱정하여 일어서기를 주저하는 권력이다.(27)

 

지금 주어진 고통에 응답함 없이 착한 권력이 되는 길은 없으며, 꼭 내가 착한 권력이 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살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희생하기. 지금 우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기. 내 마음속에 오래 품어 왔던 나의 전쟁이 시작될 때 뜻밖에도 버릴 것들이 커 보여 뒤로 주춤거리지 않도록 지금부터 꾸준히 버리고 비우기, 작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기를 연습해 둘 일이다.(30)

 

문득 돌이켜보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만 생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31)

 

그래요, 제 인생은 준비하는 생만은 아니랍니다...” 준비하는 것 외에 생의 의미를 느껴본 적이 없는 아이들. 그렇게 가르쳐오고, 그렇게 윽박지르며 몰아온 우리들이었기에 더욱 부끄럽고 미안하다.(54)

 

많이 늙어보인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대로 그대로 놔두려 한다. ... 머리도 더 희어질 것이고, 숱하게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역사의 한복판에 호출된 삶은 복되다 생각했다. 그로 인한 대가가 늙음이라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이 거죽은 아무것도 아니고 임무 완수만이 중요한 인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부르심에 이끌려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며 사는 삶, 퍼내도 메마르지 않으며 버려도 부족하지 않은 삶, 수천의 사람들과 뜻으로 이어져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느껴지는 일체감, 남들을 뜨겁게 하는 삶이라 내게 먼저 부어지는 뜨거움. ... 늙되 추하지 않아야겠다. 이왕이면 운동도 좀 해서 건강도 유지를 하면 좋겠다. 새봄에는 그렇게 해야지, 다짐한다. 그러나 그래도 달려갈 길을 생각하니 피할 수 없는 늙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56)

 

세월이 지나, 이제 나이가 들어 내가 들었던 깃발을 내려놓아야 할 때, 혹은 누군가에게 그것을 전해주어야 할 때, 그땐 정말 깃발 없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품격, 사람에 대한 깊은 정, 생의 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나눔에 대한 즐거움 같은 것이 있어야 나이 듦의 시기를 버틸 수 있다.(58)

 

카알 힐티는 말했다. “이 땅에서의 안식은 없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사명에 대한 확고한 인식입니다.”(59)

 

모름지기 가장 경계할 것이 노욕이다.(62)

 

나이를 먹어가면 직업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갈수록 삶의 보편적 본질을 직면하는 일이 크게 다가온다.... 모든 인생들이 겪는 삶의 보편적 고민을 붙들고 씨름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자기 직업의 화려함이 그 씨름에 힘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65)

 

사교육을 허용하되 분별력 있고 절제 있게 제한하고, 그 대신 사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일에 나서자고 말한다. ... 사람들 속에서 그런 새 생각, 새 통찰, 낮아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상승을 두려움 없이 포기하는 용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다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믿는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그 세상의 가치를 여기 이곳에서 미리 살 때, 그분들 곁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보고 문득 , 새 세상이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 시민이니, 그 사람들로 인해서 곧 다가올 세상을 짐작하는 것이라고.”(70)

 

불안과 걱정이 내 영혼을 삼키지 않도록 하기, 그 불안의 어두운 감정이 내 입 바깥으로 새어 나와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기, 어찌하든지 아이와 공감의 끈을 잃지 않기, 아이는 그래도 그 마음속 생명의 힘으로 살아갈 것이며, 뜻이 있는 인생이니 결코 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키는 것.”(72)

 

도무지 지금 거기 있음이 허락되지 않는 막다른 골목 속에서 그 외통수 길을 순명(順命)’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참으로 찾아야 할 에 대한 대답은 찾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해서 길은 열려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답이 결코 떠나기 전 미리 얻은 답보다 가볍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싶다, 알고 싶다.(74)

 

가장 절망스러운 때, 가장 완고한 때, 가장 벼랑 끝이라 생각하는 때에도, 그것을 넘는 희망의 역사는 찾아올 것이다. 어둠을 가장한 빛, 절망의 탈을 쓴 희망, 퇴보를 딛고 일어나는 진보, 슬픔의 옷을 입은 기쁨.(76)

 

열 가지 일에 10%씩 고루 정성을 쏟아 각각 10%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가지에 집중해 200% 결실을 만들고, 나머지는 그 속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보조적으로 갖다 붙이는 감각으로 일을 해야,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81)

 

주어진 일만 빠듯히 해내는 데 관심을 갖는 경우라면 보이는 것이 없고, 따라서 성장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고, 나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나와 조직이 혁신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끊임없이 궁구하는 사람은 결국 조직을 책임지게 된다. 조직을 책임지는 것, 아니 참된 성장의 동력은 능력이 아닌, ‘관점과 태도의 문제이다.(83)

 

목표와 내 역량 간 간격은 내가 성장할 기회이다. 나는 내 생각보다 크다.

문제의 해법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길이 있다고 믿을 때 새로운 길이 보인다.

나와 조직 속에 찾아온 위기는 새로운 길로 가라는 신호다.

다르게 생각하라. 기존의 상식과 경험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개인의 경험과 자산에만 의지하지 말라. “/연수/사람/다른 조직을 활용하고 참고하라.

내 뒤에 아무도 없고 최종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나 한 사람을 위해 뒤에 수백의 후원자들이 자신의 지갑을 열고 성원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힘쓰라.

우리의 과제는 일반 시민운동을 통해 배울 수 없는 난제들이 대다수이다. 시민운동이나 기업, 개인이든 관계없이 탁월한 조직과 탁월한 전문가를 찾아라.

문제를 붙들고 개인의 시간에 깊이 기도하라.

디테일을 소중히 생각하라.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83-84)

 

무슨 일이든 시간과 질의 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시간 때문에 질을 포기하면 안 된다. 시간의 압박에 쫓겨 타협한 일치고 잘된 일은 없다.(86)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정말 유혹이 많다. 사무실에서 개인 용도로 전화하는 것, 개인 용도로 복사기 사용하는 것, 직장에서 개인의 일을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지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짜로 취하려는 마음, 지위를 이용해서 남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요구를 무시하는 태도, 얻은 정보를 남용하려는 태도. 그것은 꼭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훌쩍 우리 곁에 들어오기 쉬운 일상의 탐욕들이다. 그런 작은 부패에 예민하지 않으면 큰 부패에도 둔감해진다. 작은 부패를 적분하면 큰 부패가 되고, 큰 부패를 미분하면 작은 부패가 된다.(89)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부끄럽게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라는 말씀. 상대를 열받게 하고 분노를 격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달라 동의는 못 하나 네 말이 맞고 내가 부끄럽다.”라는 느낌을 주는 운동의 격조를 지키는 것.(95)

 

말의 힘은 삶의 힘이 아니던가. 온 세상을 섬기려면 먼저 가까운 이웃, 따듯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눅눅한 곳에 대한 일상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95)

 

모든 것을 다 쏟아 일하지만 그것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나와 조직을 분리해서 생각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동안 만큼은 힘써 일하지만 때가 되어 더 이상 자신이 몸 담던 모임에 책임을 질 수 없는 날이 찾아왔을 때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는 것, ... (97)

 

삶에서 필요한 길이면 늘 열렸고, 필요하면 그만큼의 돈은 어김없이 채워졌다. 가난은 채움을 위한 출발점이었는지, 빈 상태로 끝난 적은 없었다. ... 세상을 구원할 절박한 일이라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에 어긋남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다. 물론 그 확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객관적 관찰이 아닌, 삶을 걸고 나서야 찾아오는 응답이었다. ... 내 것을 쏟을 만큼 가치 있다면 부족한 부분은 반드시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채움. 힘든 과정이었지만 기적은 늘 응답처럼 찾아왔다.(98)

 

집채만 한 필요가 나를 찾아올 때, 또다시 나는 돌아본다. 꼭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먼저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남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설득해야 하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 결국 은총이었구나, 그 한 가지 사실을 온전히 알아차리기 위해 나는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두려운 일이다, 아득한 일이다.(100)

 

그 일에 자신을 밀어넣을 만큼 가치를 확신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돈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103)

 

좋은 일을 하는 결정도 훌륭하지만 나쁜 일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더욱 훌륭하다.(105)

 

사람이나 조직이나 존재의 목적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 자기를 부유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105)

 

구성원들이 깨어 있다면, 그 구성원들은 결코 조직의 책임자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열광은 늘 위험하다. 열광하는 자들로 인해 그 중심부에 있는 사람이 운동의 목적에 열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심취하기가 쉽기 때문이다.(107)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 가지 일에 끈질기게 몰두하면 우리 모두에겐 소위 전문성이 생긴다.(107)

 

변화를 위한 전문성엔 을 위한 전문성에 없는 것이 잇다. 바로 바꾸는 힘이다. ... 유사한 것이라도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말과 지식, 통계인가에 따라 힘의 방향이 다르다.(109)

 

기업이 상품을 파는 곳이라면 비영리 단체는 가치를 파는 셈이다. ... 그러니 어디서든 배울 것이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자칫 나이가 들어가며 고집 센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운동은 정체된다. 그런 줄 모르고 늙는 것이 제일 흉물이다.(113)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핵심을 찌르는 간결하고 쉽게 제시하는 해결의 길, 무릇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바꾸려면 거쳐야 할 경로는 본질상 같구나 싶다.(119)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내게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정은 때가 되어 나의 기질, 내 능력, 내 안목이 되어 새로운 나를 이루고, 그렇게 해서 다져진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니 변화를 위해 초점을 맞춘 삶을 어찌 고단한 일생이라고만 할 것인가.(121)

 

리더라는 위치가 세상을 구원할 큰 사명을 붙들고 씨름하며 늘 자기 것을 내주어야 하는, 개인의 이익이란 하나도 없고, 비난과 욕설과 조직 관리로 인한 고통으로 인생을 소진하는 곳이 건강한 조직이다.(124)

 

굳건한 의지는 양심과 판단력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양심이 말하는 방향으로 일과 생활에서 매일 조금씩’ ‘한 걸음씩내딛고, 매일 작게버릴 것들을 버리며, 그렇게 차곡차곡 일상을 쌓아가다가 거센 시련 앞에서 굳건한 의지로, 그렇게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알았다. ... ‘총명한 판단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상의 작은 승리, 작은 희생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것일 뿐, 작은 걸음과 작은 포기 없이는 판단력의 총기(聰氣)’ 또한 티화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131)

 

매일 뜻을 따라 자신이 옳다 생각한 길로 한 걸음 내딛고, 그 걸음으로 인해 다른 길을 포기하며, 그로 인해 찾아온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온 세월이 진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삶의 가치를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찾아오는 특징이라고 말이다.(131)

 

김두식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생애 전체를 통해 겪어야 할 지랄의 총량은 일정하다. 지랄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그것을 어린 시절에 겪지 않으면 부족한 만큼은 나이 들어 겪는 것이다.”(136)

 

선한기대가 오히려 나를 누르고 아이를 누르며 자칫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모순과 두려움.(137)

 

너는 네 인생의 숙제가 따로 있을 것이니 네 삶을 살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이에 대한 포기가 아닌, 깊게 사랑하고 진정으로 대화하는 유일한 길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통으로 받아들이기, 그래서 아이를 보는 눈길 속에 들어갈지도 모를 불편이나 못마땅한 기운을 없애는 것.(137)

 

인생은 그 모든 굴곡을 통해 일탈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도달해야 할 길로 이르게 되는 것임을, 방황이 사실은 지름길임을, 그런 믿음을 붙들고 싶다.(139)

 

우리 생은 종종, ‘잘할 수 있지만 흥미는 없는 일을 할 것인가, ‘흥미는 있지만 잘할 수 없는 일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 속에 있다. 잘할 수 있고 흥미도 있는 일을 발견해 집중할 수 있는 운 좋은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 직접 부딪쳐 보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흥미가 견인하는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거나 흥미를 지속할 수 없는 단념의 상태를 발견하거나, 그 두 가지 모두 좋은 일이다.(142)

 

사람이란 저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도록 태어난 것이니, ‘성공을 보지 말고 을 살피라는 것이다.(143)

 

공부는 배움이다. 배움이 없는 인생은 성장하지 않는다. ... 입시를 위해 참다운 공부를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참다운 공부를 하다가 그 끝자락에서 입시와 만나는 것, 그 속에서 입시가 절대적 가치가 되어 내 삶을 유린하지 않도록 그 자리와 지위를 낮추고 낮출 것, 대학이든 일자리든 그 무엇이든 공부로 인해 얻어진 다음 길에서 자기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그것이 참다운 공부가 주는 기쁨이리라. ... 변방의 소수가 선택하는 가치라고 해서 주변부적 가치는 아니다. 무엇이 주변부적 가치인가. 선택하는 사람이 적으면 주변부인가. 아니다. 가치의 주변성 여부는 선택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선택한 가치의 보편성이 결정한다.(144-145)

 

올바로 산다는 것은 열심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맞추어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올바로 산다고 해서 언제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열심히 살기보다는 여유와 속도를 유지하며 삶의 방향을 제대로 맞추어 사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으며, 삶의 방향만 잡고 올곧게 가면 변화의 역사는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믿음.(148)

 

살아보면, 남을 따라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본질적인 부분은 따라해도 좋겠지만, 삶의 양식은 모방할 일이 아니다.(151)

 

그렇게 사는 인생이나 구름 위의 삶을 사는 인생이나, 생활의 불편을 얼마나 수용하며 살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삶의 본질은 거기서 거기다.(157)

 

어린 시절, 나는 결핍과 가난을 통해 인생을 배웠는데, 우리 아이들은 풍요를 통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걱정스런 일이다.(158)

 

가난과 결핍이 있어야 무엇인가를 욕망하며, 그 욕망이 사람을 부지런하게 하는 법이다. ... 오직 부모 스스로가 검소하게 사는 것만 아이들에게 결핍의 가치를 일깨운다. 가장 최악은 사랑은 결핍되고 생활만 풍족한 것이다. 사랑에는 풍족하되 생활은 결핍을 경험한 삶이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유익하다.(160)

 

큰 것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작은 것에서 승리하기, 부모의 말없는 행동이 아이들에게 언젠가 큰 울림이 되어 삶의 변화로 이어질 것을 믿고, 알뜰한 유혹 물리치며 매일 홀로 끈기 있게 자신의 허물과 직면하기.(161)

 

성공한 인생은 그가 가난하든 부유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영향력이 크든 적든, ‘이 땅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하늘의 숙제를 잘 풀고 돌아가는 삶이라고.(169)

 

어머니, 그 노인정은 주께서 어머니에게 맡기신 교회라고 생각하시고 그분들 잘 도와주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만이 교회는 아니에요.”(172)

 

역사상 이루어진 어떤 일도 변화의 때가 아닌데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은 없다. 때가 찼다는 것을 감지한 사람들이 뜻에 붙들려 일어선 것이고, 그들이 아니어도 돌들이 외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가 찼기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일하는 시늉만 해도 세상은 넘어지게 되어 있다.(176)

 

때가 되어 변화의 역사가 찾아올 때, 누가 무엇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비슷한 통찰과 계시가 찾아오는가 보다.(177)

 

여명아, 네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타인은 바로 네 자신이란다.”(183)

 

한국사람에겐 사람을 한 줄로 세우고자 하는 본능적 충동이 마음속에 다 있다. 그런 나쁜 의식이 버젓이 살아 있는 한, 점수로 줄을 세우는 나쁜 제도도 유지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제도를 없애는 일은 우리가 함께 내 속의 나쁜 의식과 싸우는 일로 시작되어야 한다.(187)

 

제도는 그렇게 바뀌어지는 것이다. 무릇 삶과 요구가 일치해야 힘이 있고, 그런 힘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188)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날 때 저마다 생의 목적과 가치를 품고 성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192)

 

경제적인 독립이나 안정은 부유한 삶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있음, 그로 인한 자발적 내핍, 노동에 대한 기쁨,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몰입으로 인한 흥분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안정과 독립이 진짜다.(193)

 

세상에는 두 가지 기쁨이 있다. 좋은 음악을 듣는 기쁨과 좋은 음악을 작곡하는 기쁨. ... 그리고 좋은 세상을 누리는기쁨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기쁨.(195)

 

가치를 위해 자기를 던지는 모든, 거의 모든 자기 소진은 틀림없이 그 과정에 반드시 내적인 기쁨을 동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가는 것이다. 겉으로는 소진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기쁨을 만난다. 고통 속에서도 내가 세상의 구원에 통로가 된다는 사실이 감격이다. 자신을 소진하는 자에게 준다고 약속된 하늘의 기쁨을 실제로 경험하는 일이며, 자신을 비움으로 얻어지는 삶의 풍요함으로 들어가는 신비이다.(196)

 

그런 자기 헌신이 새 역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때가 차서 변화의 역사는 찾아오는 것이고, 때가 되어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고, 사건을 만들고 바람을 만들며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197)

 

삶의 모든 영역, 모순이 가득해서 약자들의 신음이 깊어 이제 변화의 때가 찼다고 생각하는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힘으로 모든 거짓이 폭로되고 어둠이 쫓겨가는 놀라운 역사, 그 과정 속에 깃든 놀라운 변화의 역동은 어디서나 시작될 것이다. 다만 그 역사를 나의 기쁨으로 경험하는 데는 관람권이 필요하다. ‘가진 것 일부, 아니 전체를 소진하는 삶이라는 관람권이.(198)

 

아이들을 위해서 겪는 불편은 불편이 아니라는 마음, 내가 진리의 편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지, 진리 편에 서 있기 때문에 겪는 아픔은 두렵지 않다는 마음, 우리가 아이들을 지킨다면 우리는 하늘이 지켜준다는 확신, 실패해도 그것은 성공으로 치환된다는 역설의 셈. 이런 것들이 늘 마음을 안심시킨다.(199)

 

운동은 기본기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깊다. ... 운동만이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도 다 그런 기본기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204)

 

사람과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조직이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207)

 

내부적차이를 인내하면서 외부적으로성과를 낸다는 것은 고차 방정식이다.(209)

 

조직은 자연과 같다. 자연 상태란 가만히 들여다보면 흠결이 다들 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쌈박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210)

 

대표는 떠나려 하고 스텝은 말리는 조직이, 스텝은 나가라고 눈짓하고 대표는 주저앉으려는 조직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태가 아닌 한, 스텝들은 대표가 갖는 스타일과 일정한 경향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단체의 가능성은 리더십에 있다. 그의 역량만큼 성장하고, 그만큼 멈춘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리더의 싸움은 자기 한계에 조직이 갇히는 것을 털어내는 것에 있다.(214)

 

그러나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부분전체를 만나는 길이며, ‘전체를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교분을 쌓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려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내 길을 걸어갈 때 소중한 분들과의 만남이 회복되며, 그때는 단순히 만나는 기쁨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일로 만나기에 만남에 힘까지 붙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 전체의 조직을 다 알지 못해도 이 작은 조직 속에 세상 조직을 이해하는 핵심 원리가 있으며, 따라서 이 조직을 붙들고 씨름하다 보면 조직 보편을 이해하게 되며, 그 속에서 보편적 지혜가 얻어질 것이라고. ... ‘전체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로 힘을 얻고 그 교훈에서 힌트를 얻는 셈이니, 전체를 위해서라도 부분의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217)

 

처음 시작은 어두운 동굴에 가느다란 빛이 임하는 것이다. 그 빛이 임함으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이 기쁨의 맛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더 큰 빛을 더욱 갈구하여, 스스로가 어둠을 뚫고 일어서는 의욕을 갖게 되는 것이다.(223)

물론 그 명징한 선택이 나 개인에겐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모름지기 이 분명하다면, 두려운 선택도 안전한 길이다. 중요한 것은 인가의 문제이지, 뜻이 있는 길 끝자락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보, 길 한 모퉁이를 돌아야 다음 모퉁이가 보이는 법이에요.”(230)

 

그러나 을 따라 사는 삶은 용기가 건널 수 없는 강도 건너게 한다. 기백이 넘을 수 없는 심연도 넘게 한다. ‘이 있어야만 직면할 수 있는 강물과 계곡이 우리 각자에겐 얼마나 많은 가. 한 번 건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삶의 숙제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을 구하며, 얻어진 답에 우리 생을 실어야 한다. 그것만이 가장 안정된 선택이다. 진정으로 용감한 선택이다.(231)

 

목표했던 사명을 이루었으면 깨끗이 자리를 털어야지,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다 자칫 지속 가능하지 않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236)

 

지나고 나면 잊혀지는 가르침이 아니라,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가르침이 되고 싶다.

삶의 뒤안길 거쳐 또 다른 한 해가 두려울 때,

내가 붙들고 살아온 그 말 한마디 기억하고

삶은 희망이요 가능성이라고 고백하며

편지 한 통 내게 보내올 녀석, 한 명쯤 얻고 싶다.

지나고 나면 잊혀질 선생 아니라,

지날수록 보고 싶은 선생으로 남고 싶다.(239)

 

선생으로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깨어 있음에 있다.(239)

 

그럼 깨어 있음에 가장 결정적인 장애는 무엇인가. 가장 위험한 것은 좋은 일을 하되 할 수만 있으면 나에게 이익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되 이왕이면 내게도 이익이 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람 망가짐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공익과 사익이 구별되지 않고 공익 속에 사익이 퍼져 가며, 공익의 옷을 입고 사익이 기생하며, 선이 악을 위한 도구가 되며, 악이 선 속에 은폐되기 때문이다. ... 내 이익은 최소화하고, 아이들이나 타자의 유익은 최대화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깨어 있음이다.(240)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교사의 혼을 상실하는 것이다. 수업을 잘하면 무엇하나, 혼이 없는 교사라면! 소통을 잘하면 무엇하나, 혼이 없는 교사라면! 선생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얄팍한 실용의 유혹을 거절하며, 선생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일상의 가벼운 유혹에도 준엄한 선생, 이처럼 지켜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는지 늘 자신을 돌아보는 선생이라야 혼이 있는 교사다. ... 교사의 혼이 살아 있는 삶. 방향과 푯대를 잃어가는 선생들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선생으로서의 품격, 선생으로서의 기품, 선생됨의 긍지, 그것을 온몸으로 안고 고난에 찬 삶을 사는 사람을 볼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을 텐데.(247)

내 속에 들끓는 소망과 상상의 기운이 있다면 그것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막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결심이 아니라 그런 의지가 찾아왔다는 말이 정확하다. 크지 않은 것을 작다 말하고 모순에 용기 있게 직면해도 된다는 생각, ‘하늘의 뜻에 이어져 있느냐가 중요할 뿐, 다른 것은 일의 시작을 결정할 요소가 아니라는 생각. ... 결심한 일이 아니라 의지가 찾아와 시작된 일이니 후회를 말할 것도 없다. ... “내가 길이요(14,6)”라는 주의 말씀을 따라 나서는 사람 그 자신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생은 감사하다.(252)

 

가르침은 필요하나 의존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매일 무릎을 꿇고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사는 것이고, 그렇게 힘을 얻는 것이다.(254)

 

변두리에 속하나 신뢰와 협력, 생명과 평화란 중심적 보편적 가치를 굳게 붙들고 사는 사람이 있다. 단언컨대 세상은 변두리에서 보편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된다. 그들이 참된 권력이다.(255)

 

그 해방의 역사가 확대되어, 죄의 그늘 속에서 노예살이 하던 인류에게 어느 날 그리스도가 찾아왔고, 사람답게 사는 참다운 길을 얻게 되었기에 그 혜택이 오늘 나에게까지 이르렀다.(258)

뜻이 내게 임함으로 생기는 변화는 무엇인가. 연약하고 두려워 떨던 사람 속에 용기가 생기고, 자기 밥그릇에 연연해하면서 살던 인생이 삶의 터전을 두려움 없이 내던질 수 있고,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다가 문득 사람을 얻으려 나서는 것이며, 나를 설득한 그것으로 남까지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261)

 

영광과 환희는 생의 일상을 초월(beyond)’해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through)’함으로 경험된다.(262)

 

물론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는 영원의 가치를 나는 여전히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문제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영원의 가치는 오늘의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게 우리의 심리 속에 추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질곡을 몰아내는 새로운 가치로 출현한다. ... 오늘의 시간이 영원 그 자체는 아니지만, 영원의 흐름 속 한 부분이다.(263)

 

내세의 정의가 있으니 지금의 불의에 침묵하자는 종교는 거짓되다. 정의를 위해 싸워본 적도 없이,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종교가 쏟아내는 온갖 교훈은 비루하다. 버리고 버려서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는 상태의 가르침이라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말이 단순해지며, 사람의 직관과 영혼의 동의를 이끌어내어 가슴속 불을 일으킬 수 있다.(265)

 

열매를 거두지 못해도 자기 삶을 자기 바깥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기로 한 그 결심은 아름답다. 결실이 없어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기 삶을 옮긴 뜻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270)

 

행복을 유예한 것이 아니라, 고난에 참여한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고난이고 힘겹지만 그 힘겨움을 뚫고 찾아오는 어떤 만족, 어떤 긍정, 어떤 삶의 깊이, 그 어떤 삶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고난을 통해 내게 찾아오시며 네가 나의 일을 돕다니, 나의 영혼들을 돌보다니, 고맙다,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한 소리를 듣고 그분 앞에서 울며 주여, 이 비천한 인생을 들어 어찌 당신의 일을 하시나이까.” 그렇게 고백하는, 그래서 비루한 일생이 그를 통해 찬란하고 영광된 삶을 사니, 삶은 위로와 만족이요 행복이라고.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가 계신 곳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 크고 작은 고난을 받는 것은 그가 누구든, 그가 얼마를 살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강건하든 연약하든,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이 아름다운 생이다.(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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