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5일
이십 여년 만에 찾는 신학교 교정이었다.
도망치듯 떠나고 난 뒤에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에는
언제나 뭔지 모를 부끄러움과 아픔이 따라다녔다.
이번에 통신신학 하계연수회를 가게 되면서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을 하게 될까,
내심 긴장도 되고 떨리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말씀드렸더니,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좋은 것만 보신다."라는 오상의 비오 성인 말씀을 주시면서
하느님은 내 발걸음에 용기와 힘을 더해 주셨다.
학교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두려움은 마치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 든 거다.
새로움!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었다.
아예 낯선 공간이었다.
시간도, 공간도, 하느님도, 사람도 나의 죄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나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다.
아니,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또 있었는데, 그것은 나무들이었다.
그때는 내가 다른 것을 보느라 보지 못했던 나무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은 지나갔는데
그 지나가는 모습을 나무들은 보고, 알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무들은 아무에게도 내 뒷담화를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켜주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종일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모세오경과 영성신학입문.
두 분의 열강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졸기도 하고 그렇게 여덟 시간을 앉아 있었다.
강의를 하신 수녀님 말씀처럼, 내가 여태까지 하느님의 손을 잘 잡고 여기까지 걸어온 게 아니다.
내 손을 잡아주시려는 하느님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으나
그분은 내 손을 잡지 못하시더라도
나를 줄곧 지켜보고 계셨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 발걸음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내가 언제든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잡아주실 요량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걷고 계셨다는 것을 느낀다.
파견미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였다.
마음속에 품은 지향이 참 많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성모님의 아드님'들을 위한 지향,
당신의 성전을 짓듯이 시작한 우리 가정의 새 보금자리를 위한 지향,
돈을 쫓지 않고 도의를 쫓은 남편의 선택에 대한 감사,
아이들의 건강 등 짧은 시간에 이런저런 원의들을 그분 앞에 펼쳐놓는다.
다 보아주시리라 믿는다.
성체를 영하고 난 뒤, 잠시 묵상을 하는 중에
아, 하느님은 '나'를 정말 유일하게, 아름답게, 꼼꼼하게, 완벽하게 만드셨구나,
커다란 우주를 빼닮은 소우주로 만드셨구나,
그리고 몸과 마음을 포함한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매뉴얼은 바로 성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다른 모양으로 만드셨으나 성경은 모든 이에게 다 적용되는 완벽한 사용설명서로구나,
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또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은 마음이 들거든
이 매뉴얼을 찾아봐야겠구나.
이제부터라도 매뉴얼대로 살아봐야겠구나.
그래야 만드신 분의 의향대로 사는 거겠구나....
오늘 받아모시는 성체는 내 몸과 마음이 잘 돌아가도록 치는 기름 한 방울이구나....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파견 미사 끝내고 내려오는데 매미가 운다.
나무마다 허물이 무척 많이 붙어 있어서
아이들 갖다줄 생각에 손수건에 모아 본다.
바로 눈앞에 한 마리 매미가 엉덩이를 씰룩대며 열심히 울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옛날에도 이렇게 매미는 울었을 텐데,
옛날에도 이렇게 매미 허물은 많았을 텐데,
옛날에도 이 나무는 이렇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텐데...
하느님은 옛날에도, 옛날에도 이렇게 함께 계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