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메르스는 재앙이다

종이-배 2015. 6. 3. 21:16

2015년 6월 3일

 

어른이건 아이건, 온통 '메르스' 이야기뿐이다.

우리 동네에도 확진자가 있다는 둥,

동네 병원과 대형마트에도 다녀갔다는 둥,

괴담인지 사실인지 모를 말들이 떠돌아다니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병은 있지만 고칠 수 있는 약이 없다는데,

치사율이 40%라는데,

누군들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만지지 않아도, 한 공간 안에서 숨만 같이 쉬어도 전염될 수 있다는데

어찌 스스로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평소 같았으면 북적거릴 놀이터도 한산하게 느껴진다.

바로 옆 동네의 학교들도 휴업에 들어갔다고 하고,

시구청에서는 특별활동이나 단체활동을 자제하라는 공문도 내려왔다고 한다.

나도 아이들과 아침 모둠을 하면서,

이렇게 떠도는 '병균이'들에 맞서려면 잘 씻고,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고,

내 몸이 건강하면 '병균이'들은 그냥 지나간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보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새로운 '병균이'들은 자꾸만 생겨난다.

지금은 메르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신종플루였다.

신종플루 이전에는 사스였다.

사람에게 해당된 것만 해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이지,

산 채로 묻힌 닭들, 오리들, 돼지들의 비명을 불러온 또 다른 '병균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그러면서 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현대의 악이요 '재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자가격리'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기 안에 숨게 하고,

과연 누가 보균자일까, 하고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게 한다.

기침만 해도 '설마 이 사람도?' 하는 의심을 품고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게 하며,

되도록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마주 보고 서는 것도 꺼려하게 만든다.

지난 번 신종플루 때인가, 버스에서 기침하던 노인을

승객들이 다함께 내리라고 몰아세웠다던 일은

얼마나 씁쓸한지 그저 '카더라 통신'이기만이기를 바라게 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보이는 '사람들'을 옆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분리시키며

자기 자신만은, 우리 가족만은 안전지대에 머물며 살아남으면 된다는 마음을 암암리에 불어넣고,

마음의 공간을 점점 더 좁혀 놓는다.

 

이번에 메르스가 잘 넘어간다고 해도, 이후 어떤 이상한 바이러스가 얼마나 자주 출몰할지 모를 일이다.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의 생성이나 전파속도는 백신 계발 속도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죄'와 '악'의 속도는 '치유'나 '생명'의 속도와는 단위가 다르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둠이 전파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바이러스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내 몸의 면역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 중요할 거다.

모든 '죄'가 그렇듯,

그 어떤 가면을 쓰고 찾아온대도

내 마음이 튼튼하면, 그것은 내 곁을 지나갈지언정 나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때로 나를 건드릴지언정, 나를 삼켜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그렇게 스.치.듯.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건.너.갈. 것.이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재앙을 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메르스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잘 씻고, 잘 자고, 잘 먹는 것으로 '파스카'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이 요란한 광풍으로부터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뿐이다.

비록 내가 경험하는 것은 '어둠의 속도'이기에 이 광풍이 무척 길게 느껴지겠지만

하느님께서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빛의 속도'로 우리를 이 어둠을, 이 죄악을,

이 재앙의 '병균이'들을 물리쳐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제자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미사> 유감  (0) 2015.06.07
메르스에 대한 두 번째 생각  (0) 2015.06.06
6월은 조금 더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0) 2015.06.01
올해에 성령께서 주신 은사는  (0) 2015.05.25
기도의 응답  (0) 201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