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나도 공범자다

종이-배 2014. 4. 23. 17:37

2014년 4월 23일 수요일

 

슬픔과 절망, 우울감으로 지낸 지 어느새 일주일이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대형 사고에 기겁했다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있음에 일분 일초를 아까워하면서 애를 태우다가,

생때같은 자식 잃어버린 부모 마음에 함께 눈물 콧물 흘리며 울다가,

잠자리에서도 편치 않은 마음에 악몽을 꾸다가,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태에 분노하다가,

국민을 이따위로밖에는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에 분통을 터뜨리다가,

이제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뉴스를 더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하다가,

도대체 이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얼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런 사이클이 내 안에서와 같이, 모든 이들 안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다가,

일기에, 블로그에 이런 글들을 마구 써내려가다가,

또 많은 이들이 이 아픔을 나처럼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어서 다들 글로 토해내고 있구나, 하고 공감하다가,

그렇게 아파하다가, 절망하다가, 분노하다가,

그러다가 드디어 여기에 왔다.

 

나도 잘못했다고.

나도 책임이 있다고.

내가 작은 일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결과적으로 큰 일을 만들어 낸 걸 수 있다고.

'생명'이 아닌 '돈'이 물신이 된 세상에서

나 역시 그렇게 물신을 숭배하던 사람이었다고.

특히 이렇게 구조적으로,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정신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나 역시 급박한 상황에서 내 목숨 먼저 건질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고.

뜻하지 않은 사고 앞에 섰을 때 나 역시

우왕좌왕하며 순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여지가 너무도 많은 사람이라고.

비상대피문의 자물통을 열고 닫는 것처럼,

내가 귀찮아서 하지 않은 작은 습관이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거라고.

나도 공범자라고...

그래서 나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맡은 '생명'이 아무리 개별적이고

작은 것들일지언정,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를 일깨워주려고

그렇게 많은 꽃 같은 목숨들이 한꺼번에 져버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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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을 느끼고 있는데, 어제 아침 경향신문 컬럼을 읽게 되었다.

이건범 씨(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쓴 <그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제목의 컬럼이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똑같은지!

그래서 알게 되었다.

이번 사고는 하느님이 살아 있는, 남아 있는, 아직은 귀기울이고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너무도 아프고 너무도 슬프고 너무도 괴로운 공부였지만

더욱이, 그 가족들에게는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고통이겠지만

아주 먼 훗날에는 어쩌면 이 사고의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음을.

아직은 그렇게 말하기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지만,

시간과 함께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이것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특별한 방법이었다고 말할 날이 올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