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살이/걸으며 둘레둘레

8. 진산성지,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종이-배 2019. 11. 12. 20:24

2019년 11월 5일 화요일


위령의 날 미사를 묘원에 가서 직접 참례한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삼십대 초반, 수녀원에서 갔던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올해는 위령의 날에 산내묘원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가기는 했으나,

하필 토요일인데다 왠지 북적거리는 할매들 속에서 뻘쭘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포기.

어제가 엄마 기일.

엄마 묘지는 여기가 아니지만, 돌아가신 분들을 만나는 데가 꼭 '묻힌 곳'이라는 법은 없으니.

아니, 묻힌 곳에서 돌아가신 분을 만난다면 그건 공포영화처럼 소오~름 돋는 일이다.

엄마 기일인 것도 있고, 교회에서는 11월 8일까지는 묘지 방문하고 기도하면 '전대사'를 받는다고 하니,

전대사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어도 영양제 맞듯이 받는 것도 좋을 터.

그렇게 산내묘원에 들르니, 위령성월이라 꽤 많은 분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또 새 식구가 들어오시는 날이라, 열려 있는 방 안을 보면서

누군지 모르는 그 방 주인도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했다.

내친 김에 오늘은 진산성지를 다녀오기로 한다.

성당에 들러 잠깐 조배하고, 기념관을 보고 가라는 안내문이 있어 잠깐 들러 구경했다.

마침 나처럼 혼자 성지순례를 다니시는 분이 계셔서 유성시외버스터미널까지 동승.

그 분은 전국 성지 중에 이제 서른네 곳이 남았다고 하신다.

어지간한 곳은 거의 다 대중교통으로 다니신다고 하니, 본받을 점이 많다.

그분을 내려드리고 나서, 유성구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등록하고 왔다.

위령성월에 꼭 마음을 내서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하나 하고 나니, 마음이 참 홀가분하다.

내가 어떤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르지만,

내 육신을 처리하는 소소한 과정들을 미리미리 잘 정리해 두는 것은

가야 하는 나를 위해서나,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나 두루두루 좋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