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6일 일요일
이 책을 독서 목록에 넣었던 두 가지 이유.
하나는, 내가 쓰는 '야매' 같은 캘리그래피가 과연 어떤 '의미'라도 있는 건지,
두 번째는, 일곱 살 아이들에게 '우리 글쓰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우리 한글을 바르게 쓰는 묘안이 있는지, 그 팁을 얻어보기 위함이었다.
이 두 가지 목표에 대해 뾰족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글자' '글씨'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두루뭉수리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과학과 미학과 문학이 두루두루 통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간 낭비는 아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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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왕이 직접 쓴 '어제서문'이다. 한글 창제는 곧 '지식 민주화'를 의미했고, 한국 '타이포그래피의 근대'는 이렇게 밝혀져 갔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로 쓰여진 문자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일이 없기를, 알아야 할 것을 몰라서 억울한 일을 겪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이 존속되는 글자 체계를 발명해낸 것이다. 13
- 글자란 생물과 같아서 기술과 문화, 자연환경의 생태 속에서 피어난다. 13
- 책은 혼자만의 힘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16
- 나 자신을 다른 공간에 위치시키면, 나의 좌표가 달라지면서 세계라는 공간이 내게 재편성된다. 59
- 나는 간혹 물리의 언어가 시(詩)적이라고도 느낀다. 자연의 원리를 어느 학문보다도 정확하고도 정교한 개념으로 기술하고자 하는 인간 의지와 노력이 축적되어 있어, 특정한 물리 현상을 언어로 콕 집어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물질과 자연과 우주를 압축적인 수식으로 통찰한 물리학을 탐구하는 인간의 마음과 이를 예리하게 벼린 함축적인 언어로 포착한 시를 쓰는 인간의 마음이란, 그 본질이 크게 다를까 싶다. 226~227
- 너를 알고 나를 알고 너와 나의 다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문화를 정확히 사랑하는 자존의 방식이다. 263
- 뇌 신경과학자 이대열 교수의 저서 [지능의 탄생]에 따르면, 최근 인지과학에서는 직관과 감정을 이성 못지 않게 중요한 사고 능력의 본질로 본다. 장난치듯 이것 저것 해보는 잉여 행동이 당장에는 쓸데없이 보이더라도 훗날 뜻밖의 위기를 헤쳐나갈 경험적 자산으로 몸과 뇌에 새겨진다며 이 책에서는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행동이라도 이리저리 하다 보면 그 경험이 축적되어 언젠가 쓸모가 생긴다는 것이다. 잡다한 행동을 마구잡이로 해보는 호기심과 장난끼, 놀이의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보면 낙서를 하는 마음도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272
- 손으로 쓴 글씨는 말끔하고 균질하게 인쇄된 글자보다 한층 많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들을 전한다. ... 육성의 말이 몸짓, 눈빛,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수반한다면, 육필의 글씨도 몸의 상태, 기분, 감정 같은 비언어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279
- '포토그래피'는 '빛(photo)'로 남긴 '흔적(-graphy)'이다. ... 이 접미사는 라틴어 '-graphia', 더 멀게는 그리스어 동사 'γραφειν(graphein)'에서 왔다. 이것은 '글'일까 '그림'일까? 글과 그림이 분화되기도 전으로 거슬러 간, 원초적인 자국이다. 무언가를 기록해서 흔적으로 남긴다는 이미이고, '시간' 속에 머무르던 소리와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공간'으로 옮겨 고정시키는 과정이다. 순우리말 '글'과 '그림'은 어원이 같다. '긋다'에서 왔다고도 하지만, '긁다'에서 왔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글과 그림은 그 자리에 부재하는 화자, 소리, 대상이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부재하는 것들은 그리움을 일으킨다. 흔적과 자국이 마음에 남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리움도 글과 그림과 어원이 같다. '글'도 '그림'도 본질적으로 부재하는 무언가와 더 잘 연결되고 싶고 더 잘 소통하고 싶은 '그리움'을 동기로 한다. 293
- 월인천강(月印千江), 이 네 글자는 내게 인쇄술과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힌다. 달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 생각을 강물이라는 종이에 찍고 스크린에 실어 여러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글을 더 정련해서 전하고자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 타이포그래피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람들이 책과 신문과 잡지를 만드고 인터넷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림과 글자는 한 몸에서 분화했다. 한 폭의 그림 같고 한 수의 시 같은 글자들이 강물에 달 찍히듯 사람의 마음에 찍힌다. 자국으로 남겨지고, 그리움으로 그려지고, 기억으로 새겨지고,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살아남아 생명처럼 생생한 심상과 이야기를 이어 간다.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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