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평화, 그리고 조화로운 삶

종이-배 2013. 1. 7. 07:31

내 몸에는 아주 오랜 구교 신앙이 습(習)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고 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어떤 일이 있은 뒤에 입버릇처럼 '천주께 감사'라는 말이 나올 때,

개정되기 전의 기도문 문구나 성가 가사가 튀어나올 때,

예를 들면, 가끔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이 되고 '성모여 너를 천당에까지 모셔가기 원하오니~' 같은 것.

사제의 이름 앞에는 'Rev.' '존경하올'이라는 것을 붙이게 될 때 등.

그것 중의 하나가 바로 편지 쓸 때 항상 서두에 십자가 표시와 함께 '찬미예수'라고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나, '찬미예수' 대신에 '평화'라고 써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프란치스코 성인을 좋아하기 시작할 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평화....

어제 성당에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세 번이나 반복해서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세 번의 노래가 반복되는 동안 사제는 부지런히 신자석을 돌아다니며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노래가 세 번 반복되는 동안 어떻게든 많은 신자들과 눈을 맞추고 악수라도 하려는

젊은 사제의 몸짓이 아름답기도 하고, 왠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평화'에 대해 생각한다...

다들 낯선 이웃이지만 옆에 서 있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평화를 빌어주는 이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내게 평화란 뭘까. 나는 어떤 평화를 기대하는가....

아마도 평화란, 그저 배부르고 등따습고 그래서 걱정이 없고 싸움이 없고

만사태평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평화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늘 조화로우신 것처럼,

그렇게 하늘, 땅, 사람이 조화로운 상태가 아닐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과 땅 안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참 사람으로서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느님의 평화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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