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또 다시 일터에서

민달팽이가 남긴 편지

종이-배 2020. 7. 2. 07:24

"우리집에 동생 생겼어. 이름은 **이야. 아빠가 사줬어." "나도 어제 **이 사왔어. 내가 울어서 사줬어." 아이들 집에 키우고 있는 앵무새 이야기다. 나도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지만 아이들의 집에도 반려견, 반려묘, 반려조(鳥)에, 반려어(魚)와 반려충(蟲)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산다.

우리집도 아이들이 한참 자랄 때, 정말 많은 생명체가 다녀갔다. 장수풍뎅이, 고슴도치, 토끼, 햄스터, 강아지, 그리고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들. 장수풍뎅이는 큰 아이와 함께 방과후를 했던 효진이네가 너무 많다고 해서 받아온 것이고, 고슴도치는 캠핑장에서 버려진 녀석을 데리고 왔고, 햄스터는 누가 어린이집 앞에 갖다 놓은 것을 맡아왔다. 강아지는 유기견이었고, 고양이는 길냥이 출신이다. 토끼는 내 돈 주고 '사온' 것이기는 하지만, 해가 진 영등포역에서 두 마리 앞에 놓고 앉아계신 할머니를 댁에 들여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특히 부지런한 남편-의 도움으로 이 녀석들은 나름 살기 적절한 환경에서 살다가 천수를 다했다. 천수를 못한 것은 유기견인데, 아파트에서 민원이 속출해서 그 녀석이 잘 살 수 있도록 서울에서 해남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이 생명체를 너무도 쉽게 '사오는' 모습, 사달라고 하면 사올 수 있다는 요즘 상황에 마음이 참 불편하다.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밖에 나가면 유난히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개미를 잡고, 방아깨비를 잡고, 공벌레를 잡고, 달팽이를 잡고, 잠자리를 잡고. 대부분은 잡아서 관찰하고 데리고 논 다음에는 잘 보내주고 온다. 지천으로 핀 꽃들 중에 얼마를 꺾어서 꽃반지나 목걸이도 만들곤 하기에, 개체가 많은 곤충들은 아이들이 잡아서 볼 수 있도록 해주지만, 꽃들과는 달리 그 녀석들을 잡아 죽이거나 다리를 분지르거나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금하고 있다. 그 녀석들을 의인화해서 지나친 죄책감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는 것 같기에.

어제는 몇몇 아이가 아침에 잡은 민달팽이를 자기들만 또 보고 싶어서 하루종일 가둬놓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급기야 오후 놀이 시간에는 그것을 페트병에 넣은 뒤, 모래밭을 파서 묻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마음이 참 심란해졌다. 놀다가 우연히 곤충을 만나고, 그 곤충을 잠시 잡아 탐색하다가 되돌려보내는 상황과, 자기들만 쉽게 보겠다고 그걸 페트병에 넣은 뒤 모래를 파고 묻어두는 상황은 분명 다르다. 이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에 쪽지를 써서 페트병에 넣었다. 내일 그 아이들이 자신들이 묻어놓은 페트병을 찾았을 때, 민달팽이는 이런 쪽지를 남겨놓고 사라진 걸로. (2020.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