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또 다시 일터에서

고집을 부릴 땐, '릴렉~~~스!'

종이-배 2020. 6. 20. 11:31

주말을 지내고 나서는 되도록 공원 놀이터로는 나들이를 가지 않는다. 월요일 일찍 공원에 가면 우리가 만나는 첫 풍경은 아무렇게나 버린 술병과 담배 꽁초, 온갖 음식 쓰레기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쓰레기들은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일하시는 어르신들이 주로 치우신다.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어르신들에게 민망한 짓을 한참 놀기 좋아하는 세대가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쓰레기 속에서 종종 놀이감을 찾아낸다. 오늘은 화려하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과, 폭 익어 땅에 떨어진 매실 열매를 주워 놀던 아이들이 거기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로 '방향제'를 만든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생수통 하나를 구해와서는 그 안에 매실을 깨뜨려 넣고 자귀나무 꽃을 넣은 뒤 '쉐킷쉐킷'한다. 그러고는 "냄새 맡아 봐"하고 내미는데, 정말 향긋하다.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약이에요~" 하고 병에 코를 들이대는 아이들 앞에서, 불량한 교사는 불량한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 장면을 연상한다.

이렇게 쓰레기가 좋은 놀이감이 되기도 하지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배수구 아래에서 탱탱볼 하나를 주운 일도 그랬다. 터전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감을 주웠다는 건 그야말로 '득템'이다. 주운 아이에게는 득템이지만, 소유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시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럴 때 아이들의 심성이 드러난다. 오늘은 **이가 그 시샘이 하늘을 찔렀다. 그것을 찾아서 가지고 놀려는 &&이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내게는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가져가고 싶은데 못 가져가면 속상할 것 같으니까 여기에 버리고 가."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을 하는 **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고 '친구들 속상할까 봐'라는 핑계를 앞세운다. 얘기를 하다가 그게 통하지 않으니 "잃어버린 주인이 찾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다시 버리고 가자고 한다. **이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보자면, '내가 가져가지 못할 바에야 네가 가져가는 꼴은 못 본다.'는 거다. 왜 이렇게 아이 마음이 거칠어져 있을까 안타깝다. 결국은 교사가 가지고 있다가 놀고 싶을 때 같이 갖고 노는 걸로 정리가 됐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이 마음씀이 참 씁쓸했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 평소에 툭하면 잘 삐치고 우는 ##이. 그 아이는 친구들이 자기를 끼워주지 않는다고, 혹은 자기에게만 보여주지 않는다고 입에 불만을 달고 산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제 미술학원에서 만들었다는 작품을 가져왔다. 반짝이가 화려하게 붙어 있는 컵은 아이들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몇몇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반짝이를 떼어주기도 하면서 환심을 산 ##이가 갑자기 "하지 마!" 하고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라서 보니 남자 아이 한 명이 입이 비쭉 나와서는 "##이가 가져온 거 나만 안 보여준다고 하면서 바구니에 넣었어." 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니, ##이는 자기는 안 보여준다는 말을 안했다, 남자 아이는 분명히 그랬다, 그래서 내가 "봤지롱~" 하면서 놀렸고, ##이는 그 말에 "하지 마"라는 큰 소리로 대응한 것. 다른 아이들은 다 보여주면서 남자 아이에게만 안 보여준 것이 속상했을 법하고, 눈 앞에서 안 보여주고 바구니에 쏙 넣으니 "봤지롱~" 하고 약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거다. 그래서 ##이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안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서 바구니에 넣었다'는 요상한 답을 낸다. 이 아이 마음은 안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 그 안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쯤 되니 나도 슬슬 지쳐간다. "그럼 보여주고 싶어서 바구니에 넣었어?"라고 하니 그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아는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꾸중할 마음이 없다,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입을 꼭 다문 채 답을 하지 않는다. 한참 동안 승강이를 한 끝에 결국 아이는 "안 보여주고 싶어서 바구니에 넣었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그랬구나. 안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어. 그럴 땐, '지금은 안 보여주고 싶어.'라고만 말하면 친구도, 나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대부분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말마디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걸 말로 옮기는 데 애를 먹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응~ 응~" "있잖아~ 있잖아~" "그... 그..." 이러면서 말을 더듬기도 한다. 교사는 아이가 말하려는 마음에 적당한 단어를 찾아주기도 하고, 대신 읽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아이와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은 귀신같이 마음을 숨기지만, 아이들은 숨기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교사에게 번번이 속마음을 들키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끝까지 숨기려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이럴 때, 스스로 '릴렉~스'를 하면서 아이가 건강하고 정직하게 자기 표현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실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2020.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