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살이/또 다시 일터에서

아이들의 오감(五感)은 완벽하고 훌륭하다

종이-배 2020. 5. 23. 10:49

교사가 하루에 하는 수많은 일들, 말들 중에서 많이 하는 말이 "이거 누구 거야?"라는 거다. 자기 물건을 잘 챙기는 습관이 든 아이도 있고, 기질적으로 자기 물건에 애착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금 당장' 맞닥뜨려지는 욕구에 충실하느라, 자기 물건을 챙기는 것을 종종 놓친다. 그리고 그 욕구는 주로 '놀이'다. 놀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서기 때문에, 자기 양말이나 마스크, 가방, 겉옷 등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규칙은 아이들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린다. 하지만 사주면 사주는 대로 잃어버리거나, 특별한 애착이 있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오면 부모는 속이 터진다. 또 교사 입장에서는 아이 물건이 다 거기에서 거기라, 잃어버린 물건의 주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아무리 이름을 쓴다고 해도, 팬티 한 장 양말 한짝마다 이름을 다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름이 없다고 바로 분실물 처리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워든 물건을 들고 만날 소리질러 물어보는 거다. "이거 누구 거야?"라고.

그런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누구의 소유물인지 잘 찾아낸다. 교사는 외울 만하면 계절이 바뀌어 잊어버리게 되는 아이들의 이부자리도 아이들은 누구 건지 잘 안다. 똑같은 가방에 달린 조그마한 캐릭터 인형 하나로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게 속옷이나 양말이다.

오늘도 굴러다니는 양말을 들고 "이거 누구 거야?"라고 물었다. 아이들의 대답은 "냄새 맡아 봐."다. 아니, 냄새를 맡아보라니. "냄새로 누구 건지 알 수 있어?"라고 되물으니 아이들이 다가와서는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더니 "**이 것 같은데?" "맞아, **이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양말은 **이 것이 맞다.

교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냄새로 물건의 소유주를 찾아내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아이의 특출한 능력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해 살다 보니, 유난히 둔감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의 후각이 대단히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어른들이 세탁 후 사용하는 섬유린스의 냄새로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은 각자가 지닌 독특하고 고유한 체취로 구분한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오감이 어른들보다 훨씬 예민하고 발달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편식이 그저 식습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훨씬 예민한 미각 탓이었다는 것도, 아이들이 사물이나 자연의 소리를 듣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 어른들과는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늘 보던 세상도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달리 보였다. 마치 [어린왕자]에서 아이들은 모자가 아니라, 보아구렁이를 삼킨 코끼리를 보는 것처럼.

오감은 그런가 보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받고 태어나지만, 이 세상의 것들을 알아가는 동안 퇴화되어 가는 것.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규칙을 늦게 배워간다고, 정상적인 발달이 늦은 거라고, 그렇게 판단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미 닫혀버린 감각의 세계를 안타까워하면서 아이들에게 그 세계를 오래 누릴 수 있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아이들의 오감은 분명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 훌륭하고 완전하다.(2020.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