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이름을 말한다
2020년 1월 13일 월요일
오랜만에 '로사리오의 길'을 걸었다.
가을까지는 그래도 제법 자주 걷던 길인데,
겨울 들어 몸도 움츠러들고 공기질도 별로 좋지 않다는 핑계로 몇 번 가지 않았다.
땅은 마치 경칩 즈음처럼 벌써 질척거린다.
얼었던 땅이 녹은 것이 아니라 올 겨울엔 아예 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집 영춘화는 벌써 초록색으로 물이 돌고, 꽃눈도 불그레해지고 있다.
기가막혀라, 지금이 소한 절기인데!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분심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묵주알을 돌린다.
바지런히 걸으면 45분 정도, 입술도 빠르게 움직이면 15단 꼭 맞춰 바칠 수 있어서
이 길의 이름을 아예 '로사리오의 길'이라고 붙였다.
그런게 가다 보니 군데군데 상록수가 눈에 띈다.
다른 계절에는 모두가 초록이어서 보이지 않다가
지금 잎이 다 떨어진 계절에는 저렇게 선명한 초록색을 보여주다니!
'이 나무가 무슨 나무지?' 하면서 만져보다가
'모르겠으면, 모야모'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두 발짝 뗐을 때 마치 누군가 '꽝꽝나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자신있게 알던 몇몇 이름들이 있지만
꽝꽝나무는 그리 친했던 이름이 아닌데...
그런데 모야모에서도 그 나무를 꽝꽝나무라고 알려준다.
이런 경험은 예전에도 두어 번 있었다.
나무의 이름을 궁금해하면, 조금 후에 이름이 신기하게 떠오르는...
그래서 이제는 믿기로 했다.
나무들은 분명히 자기들의 언어가 있고,
나는 가끔 그 언어를 알아듣는다고.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것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는 분명히 말을 한다.
아니, 나무만이 아니라 새들도 말을 하고 짐승들도 말을 한다.
그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어서 잘 못 알아듣는 것뿐이다.
나무는 이름을 궁금해하는 나에게 이름을 말해 주었다, 스스로.
'사람들이 나를 꽝꽝나무라고 하던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아듣는 건 그저 이름뿐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나무들과 다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엄청난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이 들려주는 말을 어떤 때는 이렇게 들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