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 미사의 불편한 마음
2019년 12월 22일 일요일
내일모레면 성탄절 전야미사가 봉헌된다.
부활이든 성탄이든, 전야미사에 참례하면 전례 분위기에 한층 경건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향내가 성전에 퍼지는 것도 좋고,
장엄축복을 받는 것도 좋다.
게다가 성가대까지 노래를 잘하면 귀까지 행복한 날이 된다.
그런데, 성탄 전야 미사 때는 목의 가시처럼 불편해서 잘 안 받아들여지는 전례가 있다.
신부님이 차가운 석고(?)로 만들어진 금발의 아기 예수님을 안고 들어오는 입장 행렬도 어색하고,
예수님 크기에 비해 난장이처럼 작아 보이는 구유의 성모상과 요셉상이 그러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건,
구유예절이라고 아기 예수 인형에 깊은 절을 하는 것과 그후에 이어지는 구유예물이다.
아기 예수 인형도 십자가나 성모상과 같은 성상이기는 한데,
그걸 꼭 미사 중간에 줄서서 나와서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아무리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이게 되는 예물이라고 해도
'구유예물'이라고 이중의 헌금을 걷는 것이 왠지 떨떠름하다.
거칠게 말하자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나가는 것이지,
마치 적선하듯이 돈을 주고 오는 건 아닐 텐데.
오히려 예물을 준비하고 봉헌하려면,
성탄전야에는 자기가 아기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봉헌하면 좋을지 생각했다가
삼왕내조축일(주님 공현 대축일)에 맞춰서 그것을 봉헌하면 얼마나 좋을까.
삼왕도 유향, 몰약, 황금이라는 각각 다른 예물을 바쳤듯이
우리 각자도 자기가 아기 예수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각각 자기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선물을
적어서 바치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누구는 원래 구유예물의 의도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헌하는 돈을 내기도 할 테고,
누구는 희생과 기도를 더 하겠다는 결심을 내기도 할 테고,
누구는 어려운 이웃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소박한 애긍을 적을 수도 있겠고,
또 누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부활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내기도 하겠지,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각자의 마음과 정성대로...
모두 줄 서서 나가는 길에 안 나가고 앉아 버티는 것도 다른 신자들에게는 분심거리가 될 테고,
내키지 않는 방법으로 구유예물을 내는 시간도 불편하니,
올해 성탄 전야미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