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지석리, 산막골, 수리치골
2019년 11월 20일 수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성지순례를 하는 날은 목요일로 정했다.
이번 주는 김장이 있으니 하루를 당겨서 가기로.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딱 한 곳만 가면 더 기억에 남기는 하겠지만,
나의 목표는 수박 겉핥기로 다닌다고 해도, 일단 국내 성지로 지정된 곳은 한 번씩 돌아보는 것이라,
오늘도 서너 곳을 점찍고 출발했다. 대전교구 남서쪽 서천 방향.
이번에 다니면서 배운 것은, 내비를 무조건 믿지 말자는 것이다.
지난 번엔가는 내비에 나오지 않아서 책에 나온 주소 번짓수를 찍고 갔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목적지 주변입니다"라고 해도
내 눈에 보이는 건 축사밖에 없더라.
오늘 처음 간 '지석리'도 내비 아가씨는 아직 더 가라고 하는 걸,
내가 목적지를 먼저 발견해 찾아갈 수 있었다.
지석리 성지라는 표지도 찾고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도
내비 아가씨는 "경로를 벗어나 재탐색~" 어쩌구 한다.
하지만 내비를 탓할 일도 아니다.
지석리 성지라고는 하지만, 제대 하나 비석 하나 있을 뿐.
비신자 후손들이 성인 선조의 시성비를 세워달라고 성당에 밭을 기증해 마련했다는 안내를 보고는,
신자보다 나은 비신자 후손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고 떠났다.
다음은 '산막골,작은재'로 간다.
책에는 한 페이지에 두 곳이 같이 있지만, 두 곳의 주소는 다르다. 뭔가 수상쩍은 느낌.
역시나 작은재 주소 찍고 가다가 산막골 표지가 보여서 목표지를 바꾸고 간다.
작은 차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왠지 이렇게 가다가는 산을 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목적지 1.1킬로 앞두고 적당히 차를 세웠다.
1.1킬로 정도는 걸어가도 되겠지, 하고 내비를 켠 채 걷기 시작했다.
산으로 가는 길이야 하나밖에 없으니 길은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갑자기 멧돼지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한두 주 전만 해도 가을빛에 취해 단풍놀이 하듯이 걸었는데,
오늘은 날도 춥고 바람도 차고 멧비둘기 날아가는 소리에도 겁이 덜컥 난다.
그렇게 올라가서 산막골 앞에 있는 성모상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커다란 십자고상 아래에서 잠시 꿇어 기도하고 하산.
작은재는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 따라 찾아갔으나
제대로 찾아간 건지 어떤지도 모르고 되돌아나왔다.
그리고 잠시 딴전을 피우다가, 수리치골에 갔다.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가 자리를 크게 잡았구나.
성체조배실에 들어가 잠시 조배를 드린 후에 내려와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성물방에 들렀다.
검정색 스카프 하나 기념삼아, 후원삼아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