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신자로 사는 것이 좋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 하늘 파랗고 따뜻한데 미세먼지가 많은 날.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나 평생 가톨릭 교회 안에 몸담고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가톨릭 교회나 교회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먼저, 예비신자 교리 내용.
이 생각이 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갑자기 도무지 몇 명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리지도 못할 뿐더러, 기억도 나지 않는 '대녀들' 때문이었다. 세례를 받거나 견진을 받는다고 하면, 간혹 대모를 서달라는 부탁들 받곤 했다. 내가 열심히 살지도 않고, 남의 신앙을 이끌어줄만큼 돈독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그런 부탁을 받으면 참 난감했었다. 그래도 친분이 있으면 안 해 준다고 할 수도 없어서, 세례 대모, 견진 대모를 참 많이도 섰다.
생각해 보니, 대모만 많이 선 게 아니라 예비신자 교육도 적잖게 했다. 젊었을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도 했고, 한때는 직장인 교리교육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예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삼위일체니, 성모신심이니, 칠성사니, 연옥이니, 나부터 잘 믿어지지 않는 '믿을교리'들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던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예비신자 교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결혼을 하는데 신랑을 알거나 사랑하지 않고, 시댁의 가풍만 잔뜩 배워서 결혼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비신자 교리는 복음서로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신랑이신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려면 복음서면 된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을 만나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결심이 바로 세례성사가 아닐는지. 시댁의 가풍은 시집 가고 난 다음에 자연스럽게 익히면 된다. 신랑을 사랑한다면 시댁의 모든 것이 좋고, 알아가고 싶을 것이며, 자연스레 배우고 따르게 될 터. 복음서를 통한 예수님을 진하게 만나는 경험 없이, 4대교리니 성모신심이니 교회론이니 미사전례니 칠성사니 하는 것들을 먼저 가르치면, '가톨릭은 복잡한 것'이라고 지레 겁먹고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을 듯. 신랑을 만나 사랑하지 못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이면, 당연히 보따리 싸서 도망가는 사람이 많아질 테니, 예비신자 교육이 '교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 냉담자 수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주간이 시작되는 성지주일이다. 새벽미사에 갔더니 아직 축성하지 않아서인지 성지가지도 없더라. 새벽미사에 나오는 신자들을 홀대하면 안 되는데. '아직 채 동이 트기 전에'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의 사랑을 안고 새벽미사를 참례하는 신자들도 있을 텐데. 올 한 해 십자고상에 성지가지는 없겠구나. 아쉽다.
성삼일 전례 시간표도 나왔다. 성삼일 전례는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긴교사회의와 겹쳐서 목요일 만찬미사는 가기 틀렸다. 한 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하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만찬미사 후에 고요하고 침통한 마음으로 조배를 하러 수난감실 앞으로 가면, 그때부터 분심 시작이다. 잠시도 침묵 속에 앉아 있지 못하게 한 시간 내내 단체로 성가 부르고, 묵주기도 하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따라하다가 와야 한다.
'기도할 줄 모르고 잠만 잤던' 제자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 그냥 그 시간 정도는 기도할 줄 모르는 그 자체를 인정해 주면 안 되는지! 어쨌든 그건 '기도할 줄 모르는 무식한 평신도'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라고 치자. (하긴, 미사 때 바치는 보편지향기도도 '기도할 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대신 써주는, '국정교과서'인 <매일미사>도 있으니!) 그러면 '기도 전문가'인 수도자나 성직자는 가장 졸릴 시간에 예수님 곁에 있어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시간은 적어도 '매뉴얼'대로 가지는 않을 테니.
그런데 짜놓은 시간표를 보니, 참 가관이다. 우리 본당은 성직자가 책임지고 담당한 시간이 아예 없고, 오늘 간 옆 본당은 수도자와 성직자가 날 밝은 뒤의 아침 시간에 배당되어 있다. 가장 오기 어려운 시간, 새벽 2,3시 시간을 성당에 상주하는 수도자와 성직자가 채워야 하는 것이 상식일진대, 늘 기도하던 시간대이면서 훤히 날이 밝은 뒤 6,7시를 수도자, 성직자 타임으로 정해놓다니. 그나마 운전이라도 하는 중년의 신자들이야 자다가 일어나서 온다고 해도, 지팡이 짚고 비칠거리면서 성당에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찌 하라는 건지.
'평신도'를 '병신도'로 알고 있는, 성직자 중심주의적 교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하다. 가끔은 단체 활동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분명히 이런 것들을 보면 '욱'할 텐데 싶어서, 아직까지는 미사만 참례하는 날라리 신자로 만족하고 살아야겠다.
파푸아뉴기니 선교지에 보낸다고 집에서 쓰지 않는 성물을 모은단다. 아주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묵주도 있으니, 거의 50년 가까이 모아놓았던 성물들을 모았다. 어머니 것도 이참에 모두 기증. 이콘은 언젠가 봉쇄수녀원 취재 가서 사온 건데, 예수님 표정이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