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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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가장 앞에 쓰는 숫자가 바뀐
2017년 1월 1일 새해 첫 날 아침.
그동안 복잡하게 계산해 온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다시 '하나'부터 세기 시작하는 날.
그러나 이 날에 너무 큰 희망과 기대를 걸지는 말 일이다, 생각하면서 아침을 맞았다.
새해 첫날에 세운 거창한 계획들이 얼마나 순식간에 무너지는지,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나를 비켜가지 않을 때 스스로 느끼는 실망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큰지!
게다가 오늘 아침처럼,
내 마음에 얼마나 욕심이 많은가, 영적인 허영심이 많은가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새해가 되었다고 세운 결심들이나 계획들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을 만날 계획을 짜느라,
내가 짜놓은 계획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계획대로 모든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지 체크하느라
이미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숨쉬고 계시는 그분의 시선을 바라볼 시간을 놓치며 사는 건 아닌지,
어느 날 갑자기 타볼산으로 이끌려서 '거룩한 변모'를 하게 될 거라 믿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날을 새해 첫 날이나, 새학기 첫 날이나, 판공성사 표를 넣기 위해 마지못해 고해소 앞에 선 날쯤으로
나 스스로 정해 놓고, 그 날에 맞춰 '하루아침에' 변하게 될 거라는 허황된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나빠지는 것도, 좋아지는 것도
변하는 것도,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것도
모든 것은 그저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이루어질 뿐이라는 시를 읽으며
오늘 아침에 했던 새해 첫날의 기도를
날마다 아침마다 한 해 내내 해야 됨을 깨닫는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이루어진다.
나쁘게도 좋게도.
그렇다면 그 방향을 잘 잡아야 하지 않겠나....
2017년 1월 1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