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살기/귀여겨 듣다

<시간의 종말>을 보고

종이-배 2016. 11. 6. 22:01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순교자의 후손이면서도 나는 내 신앙이 늘 '배교자 신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런데 올해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으며, 어찌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순교자 신앙을 되새기게 되는 여러 가지 계기들을 맞게 되었다.

연초에 절두산에 갔을 때 15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를 돌아본 것도 그렇고,

국내에 있는 성지들을 직접 걷지는 못해도 마음으로나마 따라가며 짚어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

오늘 우연찮게 보게 된 <시간의 종말>이라는 영화도 그렇다.

 

순교자들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고,

나처럼 평범한 죄인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며

목숨을 내놓는다는 건 처음부터 '성인'이 될 기질을 갖춘 특별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더욱이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와서 순교까지 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감동도 없을 뿐더러, 그 나라 사람들의 뿌리깊은 신앙심으로 인한 당연한 귀결 정도로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103위 성인의 신앙이나 영성을 생각할 때도 그분들은 그냥 하나의 무리로 제껴놓아 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도룡동 성당 새벽미사를 마치고 극장에 가니 8시가 채 안 되었다.

극장 안에는 사람이 없어 살짝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상영 시간이 가까워오니 내 연령대와 비슷해 보이는 몇몇 분이 더 들어왔고

결국 대여섯 명을 위한 영화가 상영되었다.

프랑스와 한국의 성지를 배경으로 연주되는 4중주는 영화의 품격을 더해 주었고,

순교를 했던 옛날 선교사들은 옛날 선교사대로

지금 각기 다른 나라(프랑스와 한국)로 파견되어 사목을 하고 있는 현재 선교사들은 현재 선교사대로

결국은 하나의 뜻, '주님이 하신 대로 사랑하기 위하여, 선생복종(善生福終)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거룩하고,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그들은 오로지 '선교사'였기에 어쩌면 당연히 파견되어 순교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가 훌륭해서 순교까지 이른 면도 있지만

그들이 순교의 은총을 입기까지는, 그들을 살게 한, 그러다가 결국 죽을 용기까지 갖게 한

조선 교우들의 신앙, 조선 교우촌이라는 공동체의 힘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말로만 듣던, 쇠퇴해가는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현실이 실감나기도 했고

오래 전, 프랑스 청년대회 갔을 때 뵈었던 르망교구의 신부님이 화면에 나와서 반갑기도 했다.

오랜만에 영적 독서처럼 보게 된 영화 한 편,

내게는 주일이었던 오늘 하루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열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대전교구 자유게시판에 올리신 분 덕분에 보게 된 영화.

 

"<시간의 종말> 포스터는 샤를 쿠베르탱의 '출발'이라는 작품을 사용했습니다. 1868년도 작품이지만 그림 속 상황은 1864년도의 송별미사죠. 조선으로 떠나는 위엥,도리,볼리외,드 브르트니에르 신부의 표정을 보시면 어떤 상황인지 어림 잡아 짐작 할수 있겠죠. 특히 가운데서 멍한(?) 표정으로 위를 향한 볼리외신부는 저 때 불과 스물넷의 나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도 둘 보이는데요, 흰 수염을 기르고 포옹하는 이가 작곡가 구노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에 몸 담기도 했었기에 더욱 각별히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있는 꼬마는 커서 올림픽의 창시자가 되는 쿠베르탱 남작입니다. 실제 저 때는 갓난 아기였으나 작가인 아버지의 특권으로 역사적인 그림에 얼굴을 남기네요.
1865년에 조선에 도착한 네 명의 신부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모두 순교합니다."

상영시간이 가까울 때까지 아무도 없었던 영화관. 전세 내듯이 볼 수 있었지만 아무도 없으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본 조조영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