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성물은 재활용할 수 없는가?

종이-배 2016. 1. 17. 17:09

2016년 1월 17일 일요일

 

오늘도 역시 열심히 버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나하나 찬찬히 보다 보면 또다시 아까운 마음이 들까 봐,

서랍째 통째로 쓰레기 봉투에 쏟아버리기도 하고,

일일이 들춰보지 않고 재활용 상자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이라면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품보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어릴적 추억들보다 더 처분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교회에서 축성받은 성물들이다.

성서와 성무일도 등은 지난번 오지마을에 책을 기증할 때 함께 내놓을 수 있었지만,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산 지 오십 년이 넘어가다 보니

이런저런 성물들이 살림살이 안에 넘쳐난다.

세례와 견진 때, 서원 때 선물로 받은 것들도 많고

기도는 별로 하지 않으면서, 성지순례를 가거나 이색적인 성물을 볼 때마다

갖고 싶은 마음에 한두 개씩 사놓은 것들까지 합하니, 내 것만 해도 상자 하나에 가득 차 있는데다가,

지인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올 때마다 선물로 사다준 것들,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쓰시던 것들까지 합하니,

여기저기 나눠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쟁여놓은 성물들이 이제는 짐으로 느껴지는 거다.

사실 묵주기도는 묵주가 없어도 바칠 수 있고,

십자고상도 그렇게 여러 개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어떤 면에서 이런 성물도 일종의 과소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성물은 구입하는 것은 쉽지만, 처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깨지거나 부숴졌을 때는 이미 축성된 성물이 아니므로 깨끗한 곳에 잘 묻어라, 하는 가르침이 있지만

사실 땅에 묻는다는 행위 자체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흙을 보기도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리 성물이라고 해도 흙에 그렇게 묻어 버리는 것이 생태적으로 옳은가? 하는 의문도 든다.

또 깨지거나 부숴졌다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면

말짱한 것을 어디에 파묻는다거나 쓰레기봉투에 넣어 처리하는 것이 여간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누군가, 이런 성물들을 잘 모았다가 예비신자들에게 나눠주거나

교도소, 군부대 등의 사목활동에 사용하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쓰던 물건을 다시 모아, 손질을 해서 재사용하는 과정이

새 것을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이기는 하겠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새 것이 아니어서 덜 반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는지.

나도 오히려 성물은 새것보다도, 열심히 기도한 분들의 것을 더 갖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분들의 손때 묻은 성물을 볼 때면 나도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 않았나.

교회에서조차도 그런 것이 힘들어 '성물 과소비'로 간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갖는 일일까.

 

아무튼, 성물이 있으나 없으나 그것이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진대,

성물을 사는 것에 대해서도 앞으로는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물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예수님을 더 가까이 만나는 것은 아니겠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