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에 손을 댔으면
2015년 9월 30일 수요일
영명축일이기도 하고,
매월 마지막날 성서통독 부분에서 미사 참례를 독려하고 있기도 해서,
모처럼 마음먹고 평일 미사에 참례했다.
평일 미사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여건상 힘들 때가 많다.
저녁에 회의나 모임이 많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식구들 저녁을 챙겨주는 것이 더 급선무가 될 때도 많고...
그래도 이렇게 '이름 붙은 날'이 되면
저녁 시간에 또 나가면서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성당에 갈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가 9,62)는 말씀.
'예수님을 따르려면'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부분에 속한 귀절이고,
문맥상으로도 부르심과 응답에 관한 말씀에 이어져 나오는 귀절이라,
늘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묵상해 온 귀절이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으나,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욕심,
마음으로 떨쳐내지 못하는 집착 등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말씀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달리 묵상이 된다.
쟁기에 왜 손을 댔는가.
밭을 갈기 위해서다.
쟁기에 손을 댄 채 왜 뒤를 돌아보는가.
그 밭이 잘 갈아졌는지, 내가 얼마큼이나 갈았는지, 그런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쟁기에 손을 대고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은,
내가 하는 일이나 살아온 삶의 결과를 채근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얼마큼이나 갈았나, 내 마음에 맞게 갈아졌나, 삐뚤빼뚤 간 것은 아닌가,
그런 것들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잘 갈았는지 못 갈았는지
많이 갈았는지 적게 갈았는지는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앞에 갈아야 할 밭만 바라보고
쟁기질이나 열심히 해나가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이 말씀이 분명히 '부르심과 응답'에 관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응답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어떻게 응답을 하면서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기 시작하면
쟁기질의 결과에 대해 집착하게 되고,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고 나 자신이 주도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내 뜻이든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든
어쨌든 나는 이미 쟁기에 손을 대고 밭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만 바라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