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애정과 우정과 존경을 '빛의 삼원색'으로

종이-배 2015. 6. 14. 08:25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있기도 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어느 때보다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나는 누구에게서 사랑받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는가,

내게 사랑은 무엇인가...

 

내가 살면서 그동안 경험한 사랑은 얼추 세 가지 종류인 것 같다.

애정, 우정, 존경...

 

인간적인 관계와 본성에 의한 끌림이랄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부부와 연인관계에서 주로 느끼는 감정과 연관된 것을

애정이라고 한다면,

우정은 어쩌면 믿음에 가까운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자주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관계없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관계없이,

그렇게 그 사람이 그 사람의 모습대로 잘 살아가기를 기원하게 되는 그런 감정이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오래전부터 알았던 내 친구들뿐 아니라

내가 만나고 있는 일곱살 아이들과도 우정을 느낀다.

그리고 존경은, 나는 상대를 알고 있되

그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느끼는 좋은 감정이다.

프란치스코 빠빠처럼,

돌아가신 권정생, 이오덕 선생님처럼,

그 외의 수많은 책의 저자들처럼,

훌륭한 강론이나 특강으로 만난 사제들처럼,

그렇게 익명으로 만나는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 세 가지 감정은 빛깔이 각각 달라서

때로는 잘 어우러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느 하나의 빛깔이 더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애정만도 아닌, 우정만도 아닌, 존경만도 아닌,

이 셋의 감정이 조화롭게 섞인 감정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빛의 삼원색'은 섞으면 섞을수록 밝아지듯이,

이 세 가지 감정이 '빛' 속에서 섞일 때는

그 사랑은 맑고 투명하고 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빛깔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는 빛깔이 아닐까 생각하게도 된다.

이와는 달리 삼원색이라도 '색의 삼원색'은 빛의 삼원색처럼 세 가지 색깔을 갖고 있지만

이것은 섞일수록 어두워지다가 결국은 '검정'이라는 어둠에 빠지게 된다.

 

사랑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에

오늘 아침 읽은 <매일 묵상>은 다시금 사랑은 '빛의 삼원색'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지만,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부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정과 우정과 존경이 혼합된 사랑이

'감상적이고 감정적으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일침이다.

감상적으로 감정적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둠'이라는 진흙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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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며 이름을 지니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그런 부류의 사랑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성부의 사랑,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성자의 사랑,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사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하는 매일 묵상/ 6월 14일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