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늙음은 은총

종이-배 2014. 5. 10. 07:13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최근 들어 새벽에 묵상 기도를 할 때

더 강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곤 했다.

물론 분심과 잡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없이, 끊임없이 분심 잡념이 지나가는 중에도

내 둘레에, 이 우주 안에 생명의 기운으로 채우고 계시는 하느님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곤 한다...

그러면서, 아, 왜 예전에는 이런 느낌을 더 못 느꼈을까,

더 젊고 더 어리고 지금보다 더 착하고 죄를 덜 지었을 때였을 텐데,

그때는 왜 이런 걸 몰랐을까, 싶을 때가 있다.

"삶의 모든 것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적인 감수성을 청한다"는 권고를 생각하면서,

문득, 어쩌면 내 몸이, 육적인 감수성이 떨어지고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즉, 눈은 점점 더 어두워져 노안이 오고

스스로 '가는 귀가 먹었나?' 할 정도로 잘 들리지 않고

탄력 있는 꿀피부가 아니라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싫어진 외모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기도 하고 유연성도 떨어지고

대여섯 살 아이들보다도 더 느리게 뛰는, 그런 '저질 체력'이 되었기에,

오히려 '영적인 감수성'이 더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다른 감각기관을 월등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새나 나무, 꽃, 곤충들에게 인간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어느 부분에서는 쇠퇴해 가지만

그러한 쇠퇴가 또 다른 부분의 성장을 가져올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직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늙음은 은총"이다.

내 얼굴의 주름이

하느님을 더 잘 알아가는 길이 되어 줄 거다....

 

이런 묵상을 뒷받침해 주는 나의 아버지, 사도 바오로의 고마운 말씀...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