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2014년 3월 2일 일요일
우리 집에는 세 여자가 살고 있고
나는 세 여자의 몸을 씻어준다.
첫 번째 여자.
아름다운 몸, 우리 아이의 몸.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몸을 씻어줄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 몸의 곡선이 이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볼 때
샘물보다 더 맑은 투명함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의 몸을 씻어줄 때면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고 완전한 이유를 느끼곤 한다.
덜 익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작게 모여 앉은 발가락부터
먹은 만큼 볼록볼록 나오는 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엉덩이까지
아이의 몸은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두 번째 여자.
팔십 년 세월을 살아온, 고목 같은 몸, 우리 어머니의 몸.
이제는 혼자 자기 몸을 씻을 수 없을 정도로
근력이 떨어져 버린 몸, 겨울나무 같은 몸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 이성이 있는 동안은
결코 남에게 보이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내보여야 하는,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고 떠나보낸 그 몸을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낱낱이 드러내보여야 하는, 그 시간은
몸을 닦는 내게는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순수한 노동의 시간이라면,
어머니에게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손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역시 한때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던
한 여자였기에.
그리고 또 한 여자,
그것은 내 몸이다.
이제는 적당히 늙고 적당히 아파가며
그래서 적당히 부풀기도 하고 적당히 줄어들기도 하는
쉰 살 여자의 몸을 씻는다.
이 여자의 몸은 마른풀처럼 점점 건조해지고
나날이 삐걱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한 집에 사는 세 여자 중에 가장 별볼일없다고,
아이처럼 아름답지도
노인처럼 거룩하지도 않다고 느껴왔다.
그러나...
이 세 여자 중에 가장 거룩하지 않은 몸인 내가
유일하게 성체를 모신다.
내가 성체를 모심으로 거룩해져서
또 다른 여자들의 몸을 씻어준다.
그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듯이,
그분을 모신 내가
세 여자의 발을 씻고
세 여자의 몸을 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