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세 여자

종이-배 2014. 3. 2. 11:53

2014년 3월 2일 일요일

 

우리 집에는 세 여자가 살고 있고

나는 세 여자의 몸을 씻어준다.

 

첫 번째 여자.

아름다운 몸, 우리 아이의 몸.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몸을 씻어줄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 몸의 곡선이 이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볼 때

샘물보다 더 맑은 투명함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의 몸을 씻어줄 때면

뭐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답고 완전한 이유를 느끼곤 한다.

덜 익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작게 모여 앉은 발가락부터

먹은 만큼 볼록볼록 나오는 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엉덩이까지

아이의 몸은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두 번째 여자.

팔십 년 세월을 살아온, 고목 같은 몸, 우리 어머니의 몸.

이제는 혼자 자기 몸을 씻을 수 없을 정도로

근력이 떨어져 버린 몸, 겨울나무 같은 몸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 이성이 있는 동안은

결코 남에게 보이고 싶었던 치부를 드러내보여야 하는,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고 떠나보낸 그 몸을

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낱낱이 드러내보여야 하는, 그 시간은

몸을 닦는 내게는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순수한 노동의 시간이라면, 

어머니에게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손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역시 한때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던

한 여자였기에.

 

그리고 또 한 여자,

그것은 내 몸이다.

이제는 적당히 늙고 적당히 아파가며

그래서 적당히 부풀기도 하고 적당히 줄어들기도 하는

쉰 살 여자의 몸을 씻는다.

이 여자의 몸은 마른풀처럼 점점 건조해지고

나날이 삐걱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한 집에 사는 세 여자 중에 가장 별볼일없다고,

아이처럼 아름답지도

노인처럼 거룩하지도 않다고 느껴왔다.

 

그러나...

이 세 여자 중에 가장 거룩하지 않은 몸인 내가

유일하게 성체를 모신다.

내가 성체를 모심으로 거룩해져서

또 다른 여자들의 몸을 씻어준다.

그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듯이,

그분을 모신 내가

세 여자의 발을 씻고

세 여자의 몸을 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