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다시 생각해 보는 마르타와 마리아

종이-배 2013. 7. 21. 08:12

오늘의 복음은 루카복음 10장 38-42절이다.

마르타와 마리아.

그동안 여러 번 묵상했던 말씀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또다시 다르게 마음에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온 사람은 마르타였다.

마르타는 그분께 따끈한 한끼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집으로 모셔왔을 것이다.

그것도 분명히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모셔온 뒤에는 자기 할 일에 사로잡혀서

자기가 모셔온 분이 누구신지,

그분을 더 잘 알고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기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관계를 끌어가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에 열중한다.

그에 비해, 마리아에게는 이런 일들이 자기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자기 삶에 들어온 것이다.

마리아는 자기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자기 삶에 들어오신 그 상황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겸손하게 발치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자기 삶에 찾아오신 분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그분이 무얼 말씀하시려는지, 아주 잘 듣고 싶었을 것이다.

마르타는 이런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지만

마리아가 지닌 삶의 태도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리아가 자기 방식대로 바뀌기를 원했다.

 

나는 그동안 마르타와 마리아를 묵상하면서

다분히 이원론적으로 두 사람을 생각했고

그것은 '역할'의 차원으로만 이해를 해왔다.

열심히, 가족을 위해, 아니면 사람들을 위해 몸을 움직이며

그들을 위해 살림살이를 하는 엄마의 역할은 마르타요,

결혼을 하지 않고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마리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마리아가 되고 싶다는 갈망도 있었다.

내가 생각한 마리아란, 내가 수행해야 할 여러가지 역할에서 자유로이

나만을 위한 조용한 시간,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다시금 묵상하는 마르타와 마리아는

내가 사는 방식이나 '역할'의 차이가 아니라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삶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해석하려는 태도,

그것이 내게 '필요한 한 가지'이며,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좋은 몫'인 걸 거다.

나는 바쁘디바쁜 엄마로 살면서도 얼마든지 마리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2013년 7월 21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