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성모님의 육아 방식

종이-배 2012. 10. 28. 21:40

그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는 '교리'들이 있었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할 뿐,

이성이나 감정, 그 어떤 걸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교리들.

그 중의 하나가 성모님의 무염시태, 또는 동정녀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톨릭 교리를 부정하거나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교리보다는

예수님을 낳겠다고 받아들인 그분의 순명, fiat이 더 숭고하였고

한평생 질곡어린 여성과 어머니의 삶을 살아낸

그분의 삶이 내 초라한 성모신심의 바탕이 되어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순결함은 차마 따라가지 못할 고결함이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성스러움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성모님의 동정성, 정결성을

교회가 지나친 육체적 금욕주의로 접근하게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성모님은 또 다른 분으로 다가온다.

그분의 동정성은 제3의 性이라고 하는 '아줌마' 를 넘어 이제 성큼 '할머니'를 향해 가는 내게는

그다지 성스러운 덕목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금은 젊었을 때처럼 '동정성'='순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요즘 성모님에 대해 묵상하는 부분은, 아들을 키운 그분의 육아방식 때문이다.

잉태와 출산부터 그러했다.

뜻하지 않은 임신에

머무를 곳이 없는 상황에서 출산해야 하는 상황,

얻어 입힐 옷 한 벌이 없고

말먹이통에 아기를 눕혀야 했고

고작 축하객이라고는 동네 떠돌이 양치기들뿐이었을 때

아기의 어미인 성모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그렇게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어미인 성모님은 단지 '이 생명의 의미'만을 되새겼을 터다.

그리고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는 유년시절...

아마도 예수님은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평범하게 '놀.면.서' 지냈을 것이다.

열두살. 그분의 사춘기는 '가출'이라는 요즘 아이들의 통과의례를 거쳤고,

그런 과정에서 성모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을 찾아나서되,

그 아들이 하는 바를 믿고 지켜보고 기다리셨다.

나이 들어 집 떠난 아들, 남들 다 가는 장가도 못 간 아들,

더욱이 엄마가 보는 앞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아들......

그게 바로 성모님이 어미로서 겪은 모든 것이다.

이제 내가 에미가 되어 보니, 아주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에미가 되는 것이,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때로는 냉정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성모님이야말로 '이끌어 주고 내버려 두는 때'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셨던 분이었음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신, 아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 언젠가 들었던 강론 말씀이 마음에 간직되어 있다.

우리가 어머니를 어머니로 받아들인다면, 그 누구도 어머니의 정결성에 대해 논하지 않듯이

성모님을 어머니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 될 거라고 했던 말씀이다.

내가 에미로서 어려움, 한계, 부족함을 느낄 때 바로 그때가

내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