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살이

생활성서 11월호 원고

종이-배 2006. 11. 1. 10:26

<주부 예수님>

 

얼마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함께 모시고 사는 시어머님이 병환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휴가를 얻은 기분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그동안 직장에 다닌다고 슬렁슬렁 했던 집안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표시도 나지 않는 집안일만 하는데도 하루해는 금세 저물어 갑니다.

편찮으신 어른이 계시니 집안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은 세 끼 밥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손이 빠르지 못해 그런지 끼니마다 성찬을 차리는 것도 아니면서,

만들고 먹고 정리하는 것까지 한 끼에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립니다.

그러니 날마다 너댓 시간 정도를 먹는 일에만 쓰는 셈입니다.

이렇게 적잖은 시간을 식생활에 할애하는데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고민은 ‘식단’입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시간이 없어 잘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고,

세 끼니에 늘 같은 음식을 내놓을 수도 없으니,

솜씨가 별로 없는 저에게는 ‘오늘은 또 뭘 해 먹지?’가 지상 최대의 고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밥상을 받은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 식구들이 가장 고맙게 느껴집니다.

된장찌개 하나를 끓여도 바닥 긁는 소리가 나도록 싹싹 먹거나,

김치만 한두 가지 올려놓아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한지 모릅니다.

반대로,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냉장고에 넣어야 할 때나,

서너 번씩 밥상에 올려봐도 남아서

결국 음식물 쓰레기로 내보내야 할 때는 속이 많이 상합니다.

버리기 아까워 남은 음식을 혼자 먹고 있노라면 괜히 서글퍼지기도 하고요.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일마다 당신의 살과 피로 ‘따끈따끈한 밥상’을 차려 주시는

예수님의 식탁을 묵상하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분이 차리신 밥상을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습관적으로 받아먹은 적이 많았다는 것도 반성했고요.

잘 먹이고 싶은 것이 사랑이듯, 잘 먹어주는 것도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다시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차린 음식을 잘 먹고 건강한 영혼이 되기를 바라시는

‘주부 예수님’의 심정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